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閨秀學科

bindol 2022. 11. 17. 05:16

[이규태 코너] 閨秀學科

조선일보
입력 2002.12.04 19:58
 
 
 
 


20세기 굴지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여사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여성들과 여자대학들을 돌아본 끝에 한 말이 생각난다. 한국에 오기 전에
알고 있던 사전 지식과 직접 접해본 한국 여성과의 사이에는 연관지을 수
없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전 지식이란 한국 여성은
시집가기 전에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 남편을 따르며 남편 사후에
아들을 따른다는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아들을 낳으면 구슬을 들려
놀리고 딸을 낳으면 기왓장 들려 놀린다는
남존여비(男尊女卑)·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성차별,
더워도 소매를 걷지 말고 말소리가 장지문 밖에 들리지 말아야 하는 등의
구속문화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한데 그 같은 압제 전통에서 오늘날 같은
활달한 여성문화가 탄생될 수 없다는 것이 자신의 학문적 소신이며
분명히 그렇지만은 않은 다른 전통이 흐르고 있을 테니 그것이 뭣인가
살펴보라고 권했던 기억이 난다.

전통사회의 신분별 인구구성비를 보면 양반은 한자릿수에 불과하고
다대수가 중인·상민이었다. 한국 여성의 종속·차별·구속은 양반사회에
국한한 덕목이요, 일부 중인에게 추종 덕목에 불과했을 뿐 다대수의
상민은 영향력 밖에 있었다. 한국 여성사는 기록으로 남아있는 소수의
지배계급을 대상으로 한 당위성의 역사였지 기록이 빈약한 상민의 역사는
드러나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여성사의 대동맥인 셈이다. 미드 여사는
그것을 보아낸 것이요, 작금에 그것이 위세를 몰고 드러나고 있다.
초등교육에서는 남선생의 태부족으로 아이들 자질형성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하고 청와대를 비롯, 주요 정당에서 여성 대변인을 내세운 것은
여성의 활력이 정치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거기에 올해
사법시험에 25%가 여자요, 수석·최연소에서 최고령까지 여풍이
휩쓸었다.

지방의 한 여자대학에서 새 학기에 전통사회 부녀자의 덕목이나 기예
생활상을 가르치는 전통 규수학(閨秀學)과를 둔다는 것을 두고
여성단체들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규(閨)자가
말해주듯 그 좁은 문에 갇히지 않고 문 밖에서 활달하게 살아온 서민
여성문화를 발굴, 활성을 띠고 있는 현대 여성의 자질과 접목시키고
좁아지는 지구촌에 투자문화로 가꾸어 나가는 학과로 거듭났으면 좋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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