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촛불 시위
2차대전 말 유대인 수용소에 갇혀 있던 정신의학자 프랑클은 촛불을
지켜보며 죽어간 60대 할머니 이야기를 써남겼다. 켜지 못하게 돼 있는
초를 구해 담요를 둘러쓰고 자기만의 암흑 속에 그 촛불을 응시하는
것으로 삶을 확인하며 연명하고 살았다. 어느날 너무 오랫동안 기척이
없어 담요를 벗겨보았더니 촛불은 닳아 꺼지고 할머니는 눈을 뜬 채로
굳어있었다 한다. 이 수용소의 할머니는 촛불이 생명이라는 구상(具象)의
조각이다. 30년 전이던가 수녀들의 촛불예배 앞에서 행한 바오로6세의
설교도 잊혀지지 않는다. '곧고 무구하며 순결한 마음의 막대에 더러는
아프게 정열을 불태우는 촛불은 그대들의 삶과 매한가지로 침묵속에
소진하는 운명을 감당하고 있다. 소진해도 죽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만남 속에 촛불은 타 나아갈 것이다. 그대들 삶처럼ㅡ.' 이처럼
촛불은 초월자에게 인도하는 조명이기도 하다.
촛불은 이승과 저승간의 통로를 밝혀주는 가로등이기도 하다.
옥황상제로부터 집안 식구들의 이듬해 운명을 점지받은 조왕신이
하강하는 섣달 그믐날 밤 대청, 부엌, 외양간, 장독대, 샘가, 곳간, 측간
할 것 없이 온 집안에 촛불을 켜놓고 잠자지 않고서 마중하는
조허모(照虛耗) 풍습도 그것이다. 영국에서 캔들마스라는
성촉절(聖燭節)은 풍년을 기약하는 성인(聖人)이 하강하는 날로 그
성인을 위해 침대하나 정결하게 비워놓고 머리맡에 촛불을 켜놓는 것도
한국의 조허모와 같은 이치다.
부정적 이미지의 촛불 민속도 없지 않았다. 유럽에는 증오하는 상대를 한
자루 초로 상정하고 이를 저주하여 촛불을 태우는 민속이 있었다.
마녀사냥이 심했을 때 만성절(万聖節) 전야에 온 마을사람이 촛불을
켜들고 마을 뒷산을 헤매며 숨어있을 마녀를 쫓는데 초를 하나의 마녀로
상정하는 마녀 토벌 의식(儀式)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관아에의 집단
소원인 등장(登狀)갈 때나 민란을 일으킬 때 횃불을 들고 민심을
집결했던 것도 조명 이외의 주술적 부기기치가 없지 않았다. 여중생
치사사건을 둔 항의 촛불시위가 연일 잇따르고 있다. 희생자를
위령하기도 하려니와 민원(民怨)의 집결수단이요 미국에 대한 등장(登狀)
시위가 복합된 촛불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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