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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상 형 보호하려 5층 걸어가"…'유동규 입' 앞세운 檢 전략

bindol 2022. 11. 18. 05:55

"정진상 형 보호하려 5층 걸어가"…'유동규 입' 앞세운 檢 전략

중앙일보

입력 2022.11.18 02:00

 “공소장 내용은 소설에 불과하다”(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검찰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구 그 자체다”(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피의자 진술에만 의존해 군사작전하듯이 의원회관과 지역사무실, 자택까지 압수수색했다”(노웅래 민주당 의원) 

더불어민주당은 각종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김용(56) 부원장과 정진상(54) 실장은 물론이고 노웅래(65) 의원까지 “관련 피의자 진술 외에는 물적 증거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이 공소장과 압수수색영장 등에서 제시한 구체적 혐의 사실은 “모두 허구”라며 전면 부인하는 전략이다. 검찰은 이에 “증거는 차고 넘친다”면서도 재판 때 하나씩 꺼내보이겠다며 결정적 증거를 숨기고 있다. 민주당의 전면 부인 전략과 검찰의 히든카드 전략의 대결인 셈이다.

대장동 공판에 출석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연합뉴스

유동규의 입 “집으로 오라니 갔다…그땐 형(정진상) 배려로 5층까지 계단 올라가”

이 때문에 지금은 핵심 증인인 유동규(53)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검찰 대신 “그땐 형(정진상)이니까 보호하려 5층 계단을 올라간 것”이라며 민주당과 공방전에 나선 형국이 됐다. 검찰 입장에선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측근이자 정진상 실장, 김용 본부장과 당시 형제처럼 지낸 유 전 본부장의 입은 강력한 무기다. 유 전 본부장이 일종의 내부고발자로서 정 실장, 김 부원장에 대한 금품 전달 과정을 상세히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 전 본부장은 17일 검찰 조사에 출석하며 기자들과 만나 2019년 9월 정 실장 아파트로 직접 찾아가 3000만원을 전달한 과정을 직접 설명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는 상식적으로 폐쇄회로(CC)TV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사람(정진상)을 좀 배려하는 입장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5층까지 걸어 올라갔다”며 “그땐 형이니까 어쨌든 보호해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으로 오라고 했으니 간 거고 갑자기 찾아갈 순 없잖아”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측이 “계단 입구에 CCTV가 설치돼 있어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 데 대해 “제가 그 아파트에 사는 것은 아니니까 계단 CCTV가 어디에 있고 이런 것은 잘 모른다”고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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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 실장과) 얼마든지 대질하겠다”며 “재판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를 비난하는 민주당을 향해 “우리나라가 그렇게 허술한 나라는 아니다. 옛날에 무슨 군사정권 시절 때도 아니다”라고도 대신 반박했다. 검찰이 하고 싶은 말을 핵심 증인이 스스로 나서 민주당과 공방을 벌이는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檢 히든 카드 전략…“결정적 물증은 재판 때까지 숨긴다”

법조계에 따르면 뇌물 등 사건에서 검찰이 관련 공여자 진술 외에 결정적 물증을 재판이 열릴 때까지 공개하지 않는 등 공판중심주의에 따라 검찰의 입증 전략이 달라진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과거엔 검찰 수사과정에서 공여자 진술과 피의자의 자백이면 입증이 끝났다고 봤지만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이 제한됐고 공판에서 증거로 피고인의 방어막을 허물어뜨려야 유죄 입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서 공여자가 진술을 번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전 총리 동생이 불법 정치자금 중 1억원의 자기앞수표를 전세자금으로 쓴 내역을 증거로 제시해 1심 무죄를 유죄로 뒤집은 게 결정적 사례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그동안 수사단계 피의자에 교부하는 압수수색영장 등에 혐의사실을 너무 많이 적어냈더니 방어할 기회만 주는 꼴이 됐다는 내부적 분석에 따라 요즘에는 영장 등을 가급적 드라이하게 쓰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 부원장의 공소장 19쪽 중 실제 혐의 적힌 분량은 3쪽에 불과하다는 민주당 일각의 비난은 이런 수사기법 변화를 알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란 뜻이다.

법조계에서는 대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 1·2·3부에서 진행 중인 수사의 정밀도를 측정하려면 영장과 공소장의 ‘디테일’을 봐야한다고 한다. 뇌물을 모은 후에 전달자가 특정 시점과 장소에서 공여하고 대가를 약속받는 과정이 치밀하게 영장과 공소장에 재구성돼있다는 건 그만큼 진술과 물증을 쌓아놨기 때문이란 것이다.

실제로 김용 부원장과 정진상 실장의 영장·공소장을 보면 대장동 민간업자인 남욱(49·천화동인 4호) 변호사가 허위 공사비 계상, 지인 차용 등의 방법으로 현금을 마련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특히 남 변호사가 지난해 4∼8월 김 부원장이 요구한 대선자금을 마련하려고 당시 부동산 시행업자 류모씨로부터 5억원을 빌린 차용증과 “당시 5만권으로 채운 종이상자 5개(개당 1억원)로 5억 원을 건넸다”는 류씨 진술도 확보했다고 한다. 검찰은 류씨가 당시 건넨 종이상자를 확보해 실제 1억원이 들어가는지 실험까지 마쳤다고 한다.

유동규-김용 불법 자금 전달 의혹.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물증만 느는데…민주당 일각 “李 리스크에 당 전체가 수렁으로 빠진다” 

검찰이 차곡차곡 물증을 쌓고 있는 반면 허위 진술로만 치부하는 민주당의 전면 부인 전략을 놓고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선자금’ 수사를 천명한 만큼 차라리 일부 혐의사실을 시인하고 ‘개인 비리’로 정리했다면 당 전체로 위험이 확산하지 않고 몇몇 측근의 일탈로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법조계에선 “검찰의 정교한 수사계획에 민주당이 차근차근 말려 들어갔다”(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말이 나온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도 불만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다. 당직자들 사이에서도 “정진상 실장은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인데, 당이 이 사람을 위해 희생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당 전체가 수렁에 빠지고 있다”는 불평이 수면 아래에서 부글거리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거짓말은 한 조각이 어긋나면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지게 된다”며 “지금은 민주당의 주장을 내버려 두고 법정에서 따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