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춤추는 회의
악녀요, 음녀로 황제에까지 오른 당나라 무조(武照)는 스스로를
관음보살로 신격화했을 만큼 불도에 귀의하는 척했다. 그녀가 권력을
잡기 전에 감업사(感業寺)에 출가하고자 삭발하기 전야의 일이었다. 이별
인사차 오랜 만에 찾아온 조카 무삼사(武三思)가 미남으로 장성해 있는
것을 보고 이를 유인해 잠자리를 같이했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과
자행하는 실속이 정반대되는 표리부동을 빗대어
「무조삭발(武照削髮)」이라 했다.
서양에서 영화까지 된 「춤추는 회의」도 「무후삭발」 같은 표리부동의
회의를 빗댄다. 1814년 나폴레옹의 패배로 유럽에는 오랜 만에 평화가
찾아 왔다. 하지만 열강의 이해 충돌로 국가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어 이를 해결하고자 소집된 것이 빈회의다. 유럽의 유명한
제왕을 비롯하여 명 재상 등 정식 대표만 210명이 모인 국제회의였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요, 회의를 시작해서 해를 넘겨 무려 9개월이라는
사상 가장 긴 회의였으며 그 기나긴 시간 동안 회의는 하지 않고
퍼마시고 춤만 춰 허송했다는 놀자판으로도 기록을 가진 회의다. 이
춤추는 회의의 분담금 때문에 약소국은 재정 파탄까지 초래했으니 알아볼
만하다.
10년마다 열리는 지구 정상들의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회의는 현안들에
대한 합의만을 이루고 실천에 대한 언질 없이 어제 폐막했다. 무모한
개발, 환경 파괴 등으로 매년 스위스 국토의 4배나 되는 열대림 소멸과
사막화 때문에 대량으로 생겨난 기근, 빈민, 재앙, 음료수 부족 등등이
논의됐던 이 회의는 명분은 구하고 실은 못 챙겼다고 환경 단체들이
규탄했다. 기억해둘 일은 이 회의의 만찬에 고급 음식인
상어알(캐비아)과 바다가재, 최상품 포도주 등 산해진미가 올랐고
대표들이 마시려고 호텔에 쌓아놓은 생수만도 8만병에 이르렀다 한다.
바로 기아(飢餓)의 고장인 요하네스버그 그 교외의 한 빈민촌에는
하나밖에 없는 수도꼭지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데 굶주림과 물 부족을
타개한다는 서밋(summit)이야말로 무조삭발이요, 춤추는 회의가 아닐 수
없다. 그 회의장인 컨벤션센터의 입구 정면에 죽어가는 생명과
무너져가는 환경의 공포, 불안을 절규하는 6000여 매머드 인간군의
조각이 있다. 그 절규를 등지고 흩어져 간 정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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