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태풍속의 무궁화

bindol 2022. 11. 20. 16:03

[이규태 코너] 태풍속의 무궁화

 

조선일보
입력 2002.09.02 20:29
 
 
 
 


당나라 여제(女帝) 측천무후(則天武后)는 한겨울 궁중 잔치에
백화(百花)를 만발시키고 싶었다. 아부배들이 신통력을 발휘하기를
청하자 무후는 천자의 전용지인 황지(黃紙)에다 「백화가 소용되오니
화신(花神)으로 하여금 꽃을 빌려주게 하소서」하는 천신(天神)에의
차용증서를 써 올렸다. 궁중에서는 난리가 났다. 사방팔방에 사람을 풀어
성 안의 방 안에서 기르는 화목들을 모두 거두어 백화를 만발케 하여
무후의 신통력을 입증해야 했다. 그 만발한 백화 가운데 오로지 한
화목이 꽃잎을 닫고 피지 않았다. 화가 난 무후는 무슨 꽃이냐고 물었다.
'목근화(무궁화)입니다' 하자 그 나무를 촌단하는 혹형을 내렸다.
무궁화는 악에 저항하여 순교하는 지조가 매운 꽃이다.

한시(漢詩)에도 그 열기(烈氣)가 완연하다. 송나라 양만리의 시에
「목근화는 손무(孫武)의 세력으로 아침에 피고/녹주(綠珠)의 절개로
저녁에 진다」 했다. 춘추시대의 병법으로 유명한 손무는 오왕(吳王)에
등용되어 서쪽으로 초(楚)나라를 치고, 북쪽으로 제(齊)나라를 격파했던
강한 세력의 싱징이다. 중국 고금의 제일 부자인 석숭(石崇)의 애첩
녹주(綠珠)는 정조를 빼앗기지 않으려 그 부귀를 버리고 다락에서 몸을
던져 죽은 절개의 상징이고―. 무궁화의 열기와 절개를 이렇게 손무와
녹주에 비유했는가 하면 원나라 서유는 「봄에 뭇꽃들과 다투질
않고/여름에 유독 홀로 피어/염천에 쇠를 녹이는 더위와 싸운다」고
읊었다.

지사 남궁억(南宮檍) 선생은 홍천 보리울에 은거하면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무궁화 묘표를 만들어 보리울을 무궁화 고지로 만들고, 묘목을
뽕나무 묘목으로 위장, 무궁화로 피어나게 하여 저항했다. 조선팔도를
여덟 송이 무궁화 나무로 수놓은 금수강산 수본을 창안, 방 안에 걸게
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무궁화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은밀히
보급시켰다. '다른 꽃과 비겨 무궁화는 접붙여도 살고 꺾여도
성하도다' 했고 '아름드리 거목도 모진 바람에 뿌리가 뽑히지만 무궁화
생울타리는 결포(結抱)하여 태풍보다 더 모진 바람도 이겨낸다'고
읊었다. 지금 온 나라가 태풍에 할퀴어 온 백성의 심정 속에 태풍보다 더
모진 바람도 이겨내는―서로를 껴안는 결포의 무궁화로 피어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