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金배 銀사과

bindol 2022. 11. 20. 15:59

[이규태 코너] 金배 銀사과

조선일보
입력 2002.09.05 20:13
 
 
 
 


과일 값이 폭등하는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그 하나는 역사적으로
연고가 있는 과일일 때 프리미엄이 크게 붙는다. 중국 푸젠성에서 나는
자색 여지는 여느 여지보다 100배나 값이 비싸다 한다. 양귀비가 여지를
좋아하여 푸젠성의 여지를 장안까지 준마를 릴레이시켜 갖다 먹었다는
바로 그 여지이기 때문이다. 한 장사치가 이 자색 여지의 품종을 찾아내
독점하여 번식시키지 않고 떼돈을 벌고 있다고 들었다. 양귀비 때문에
값이 비싼 과일로는 이원(梨園)배도 있다. 당 현종은 양귀비와 더불어
연극과 가무를 즐겨 궁 가까운 배나무 밭에 이 배우들을 살게 하여
양성했기로, 이원하면 연예계의 별칭이 돼왔다. 시안 사는 누군가가 이
이원터를 찾아내어 이원배를 특화, 여느 배 값의 곱절로 팔았다 한다.

과일 값 폭등의 다른 요인으로 매점매석을 들 수 있다. 「허생전」의
허생은 남도에서 올라오는 밤·대추를 모조리 매점해버린다. 제사 지내는
것이 인간으로서 존재가치를 부여했던 전통 사회인지라 품귀한 이 제수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허생은 매점한 과일을 풀어
치부한다. 관리들의 가렴주구가 혹심할수록 과일 값이 오른다기도 한다.
옛날 제주도의 귤나무 가진 백성들은 그 수탈을 감당할 수 없어 울면서
귤나무 뿌리에 독을 부어 고사시키기 일쑤였다. 이렇게 하여 귤나무가
줄어들었고 생산량이 격감하기에 값이 오를 수밖에 없었겠다.

「삼복에 내린 비는 충청도 보은 청산 색시의 눈물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대추는 삼복 중에 익는데 비가 내리면 흉년이 들고, 오로지 대추
팔아 혼수를 마련하는 이 대추고지 아가씨들이 시집 못 가 운다는 것이니
복중 날씨가 과일 값에 영향을 미치고 성숙기 과일에 낙과(落果)를
몰아붙이는 태풍도 값을 폭등시킨다. 지금 태풍 루사로 인한 낙과로
성수기인 추석을 앞두고 금(金)배 은(銀)사과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리 「합격」이라는 글씨가 박혀나오게 기른 사과를
수험생들에게 비싸게 팔아왔는데 이웃 일본에서는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고 나뭇가지에 버티고 있는 사과를 합격사과라 하여 일본 돈 5만엔을
얹어 판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해서라도 과수농가의 아픔을
덜어주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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