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UN본부의 김치

bindol 2022. 11. 20. 16:28

[이규태 코너] UN본부의 김치

조선일보
입력 2002.08.07 19:43
 
 
 
 


유엔본부 지하 1층에 있는 주 식당의 정식 메뉴에 한국김치가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국김치의
세계식품으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선포하는 것이요, 세계
식문화사(食文化史)에 여러 가지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된다. 식문화는
3단계로 발전해왔다. 고기나 야채 등을 날로 먹는 생식(生食)단계를 거쳐
익혀 먹는 요리(料理)단계로, 다시 삭혀 먹는 발효(醱酵)단계로 발전해
간다는 것이 정석이다. 물론 요리단계에 들었다 하여 생식을 하지
않거나, 발효단계에 진입한다 하여 요리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발달해간다. 한국에도 왔던 미래학자 토플러는 21세기에는
제3의 맛 시대가 도래한다고 예언했는데 바로 요리의 맛으로 낼 수 없는
발효의 맛이 제3의 맛이다. 그 제3의 맛의 대표 주자가 김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이 김치의 첫 번째 문화사적 의미다.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인류는 물리적 맛에서 화학적 맛을 추구하게
된다. 물리적 맛의 대표적인 음식이 샐러드다. 각종 과일과 야채를
마요네즈에 버무려 놓은 것으로 마요네즈를 물에 씻어 없애면 원형대로
환원되고 만다. 각종 소스로 맛을 달리해 내는 맛이 물리적 맛이요,
화학적 맛은 환원이 불가능하다. 삭은 김치를 배추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대륙의 가장자리에 자루처럼 매달린 한반도ㅡ. 그
자루에는 대륙을 타고 드는 잡동사니 이질문화들이 마냥 흘러들어
빠져나가지 못한 채 중첩되어 제3의 문화로 발효될 수밖에 없었다.
김치는 바로 이 제3의 문화의 대표 작품이랄 수 있다. 이것이 두 번째
문화사적 의미고ㅡ.

김치의 세계화는 서양사람의 혓바닥에 미개한 발효미역(醱酵味域)을
개척해 줄 것이다. 쓴맛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밖에 모르는
5원미(五原味)시대에서 삭은맛을 더한 6원미(六原味)시대를 열어주는
것이 김치의 세 번째 문화사적 의미다. 세계에서 발효미역이 가장 발달한
것이 한국인임은 한국사람이 먹어내린 음식의 80% 이상이 김치류 장류
젓갈류 장아찌류 등 발효음식임이 입증해준다. 김치를 프런티어로
발효미역이라는 서부를 개척해나가면 그 밖의 한국 발효음식들이 줄줄이
뒤따라 들 것이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김치의 유엔 차지는 문화사적
의미가 크다고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