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고전 속 정치이야기] 과잉포장(過剩包裝)

bindol 2022. 12. 9. 18:33

[고전 속 정치이야기] 과잉포장(過剩包裝)

천지일보

승인 2022-12-01 18:06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로사는 기능주의 건축학의 대표작 ‘장식과 죄악’에서 지나친 장식을 노동력과 돈과 재료를 낭비하는 죄악이며, 문화적 진보는 장식을 제거한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지적했다. 신기능주의를 대표하는 독일의 한 설계사는 제품을 설계할 때 미적인 요소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가식적이고 허망한 제품을 만들 가능성이 높으므로, 설계자는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능주의 운동가는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적은 것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나머지 많은 것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묵자의 생각도 같았다.

묵자와 2천년 후의 서양 기능주의 설계가들의 비교가 견강부회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양자를 비교해보면, 그들이 주장하는 핵심은 매우 유사하다. 극단적 기능주의 설계관은 오늘날 존재하는 각종 폐단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식이 반영돼 있다. 물질적 상품이 범람하는 오늘날은 더욱 호화롭게 포장을 해야 소비자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인들이 즐기는 월병과 차의 호화로운 포장은 내용물의 실용적 가치를 훨씬 초과한다. 최근 중국에서 사온 차를 보자. 맨 바깥은 종이로 만든 화려한 봉투로 포장한다. 그 안에는 장방형의 나무로 만든 상자가 있다. 상자 안에는 황금빛이 감도는 양철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통이 있다. 통 안에도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작은 봉투가 있고, 거기에 차가 들어 있다. 우려서 마실 차는 고작 100g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포장의 무게는 200g이 넘는다.

포장의 원래 목적은 상품을 신선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외부 디자인은 부수적일 뿐이다. 그러나 포장이 화려할수록 상품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마케팅적 관념 때문에 날이 갈수록 포장은 화려해지고 사치스럽게 변한다. 포장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포장의 낭비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아는 사람은 놀라고 만다. 속옷과 월병 2종류의 상품을 포장하기 위해 소요되는 자원이 얼마나 많이 낭비되는지를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북경에서 매년 각종 상품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자가 83만t이나 되고, 그 가운데 60만t은 절약이 가능한 과대 포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포장의 낭비는 최근 더욱 심해진 호화로운 월병의 포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월병은 원래 추석에 먹는 것으로 오랫동안 중국인들의 민속에 속했다. 거기에 길상을 나타내는 각종 문양을 새긴다. 월병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추석에 먹는 송편에 비유해도 좋다. 중국의 경제력이 향상되자, 최근에는 엄청난 고가의 월병이 등장했다. 보통 중저가 월병 가격에서 30%가 포장비용이다. 조금 비싼 월병은 포장비가 월병의 제조가격보다 많다.

서양의 기능주의 설계 사상은 도덕적 사회를 만들겠다는 일념이 꽃으로 피어난 결과이다. 선진국의 디자인은 단순한 것 같지만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사상은 여러 기업에 영향을 미쳤다. 신뢰받은 일류기업은 상품을 포장할 때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혜택과 아울러 환경을 보호한다는 목표를 미리 설정한다. 선진국 기업과 소비자는 이러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정부와 의회는 이러한 원칙을 입법화하고, 구체적인 표준을 마련한다. 기업도 이러한 원칙을 준수해야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한다고 생각한다. 1995년 일본은 용기와 포장에 대한 재활용법을 반포했다. 기업은 생산량과 유통량을 감안해 일정한 처리비용을 부담한다는 내용이다. 협회는 이 자금으로 폐기물처리업체에 위탁해 용기와 포장용품의 폐기물을 분해해 다른 공업원료를 생산하는 새로운 경제순환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시적으로 과도한 포장을 제한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했지만, 어느 틈에 은근슬쩍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