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만물상] ‘영원한 왕조’ 꿈꾼다는 金씨들

bindol 2022. 12. 11. 08:49

[만물상] ‘영원한 왕조’ 꿈꾼다는 金씨들

입력 2022.12.10 03:18
 
 

2016년 10월 13일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숨지자 북한은 김정은 명의의 조전(弔電)을 보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북은 덩샤오핑·카스트로 등 사회주의 지도자나 김대중·노무현·정몽헌 등 입맛에 맞는 한국 인사들의 부고에만 선택적으로 최고지도자 조전을 발송해 왔다. 태국은 북과 수교하긴 했지만 매년 미국과 연합훈련을 하는 미국의 우방이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올브라이트의 회고록에 이 의외의 조전에 대한 단서가 있다.

▶올브라이트는 2000년 10월 방북 당시 김정일과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했다. 올브라이트가 경제 개방 의사를 묻자 김정일은 “중국식 개방에는 관심이 없다”며 “왕권이 강력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경제도 발전시킨 태국 모델에 깊은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의 관심을 끈 게 태국의 경제인지 강력한 왕권인지 궁금하다고 썼다.

▶북한은 공화국을 표방하지만 세습 왕조 국가다. 김정일은 그래도 삼촌 김영주와 왕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김정은은 김정일 와병 탓에 왕세자로 급조됐다. 동서고금 모든 왕조의 최대 관심사는 왕실의 영속이다. 가장 오래된 왕조는 일본 왕실이다. 기원전 711년 태어난 진무(神武)로부터 126대 현 나루히토 일왕까지 이어진다는 게 일본 주장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한다. 2700년에 가깝다. 하지만 실권이 없는 일본 왕실은 김씨 왕조의 모델이 아닐 것이다.

 

▶푸미폰 국왕은 재위 기간이 70년 126일로 역대 3위다. 1위는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72년 110일), 2위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70년 214일)이다. 46년 집권한 김일성은 82세, 17년 집권한 김정일은 69세에 모두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가족력이 이런데도 38세로 11년째 집권 중인 김정은은 고도비만에다 술·담배를 달고 산다. 북 만수무강연구소가 아무리 애를 써도 장수를 장담하기 어렵다.

▶총리 명의이긴 했지만 북은 2015년 3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가 사망했을 때도 조전을 보냈다. 리콴유가 31년 통치한 뒤 ‘대타’ 고촉통을 거쳐 아들 리셴룽이 3대 총리를 맡고 있는 싱가포르 모델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정해진 데에도 이런 호감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제 북한 노동신문은 올해를 결산하며 ‘노동당의 800년, 8000년 집권’을 언급했다. 김씨 왕조는 올해로 77년이다. 21세기에 국민을 굶겨 죽이는 왕조가 100년을 넘긴다면 세상에 정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