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년 산책 18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무덤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무덤 중앙일보 입력 2022.07.08 00:32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 DC 부근에 가면 마운트버넌이라는 곳이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저택과 농장이 보존되어 있다. 미국인은 물론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관광지의 하나이다. 농장 안을 거닐면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워싱턴은 두 차례의 대통령 임기를 끝내고 주변의 간곡한 연임 권고를 거부하고 사저로 돌아와 살았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면 워싱턴은 “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지금 백악관에 계십니다. 이름만 부르기 어색하면 파머(farmer·농부)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미국은 영국 전통을 따라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 응당 국회의사당 안에 안..

23년간 뒷바라지, 뇌졸중 아내가 떠났다…내가 울지 못한 이유

23년간 뒷바라지, 뇌졸중 아내가 떠났다…내가 울지 못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2.06.24 00:36 업데이트 2022.06.24 01:51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내 아내가 병중에 있을 때였다. 대학 동창인 정 교수의 얘기다. 요사이 우리 동네 교수 부인들은 김 교수 칭찬이 대단해서 남편들의 위신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제 저녁 식사 때는 정 교수 부인도 “당신은 내가 중병에 걸린다면 20년 넘게 뒷바라지할 수 있어?”라고 해 “5년은 할 수 있어”라고 농담했다가 구박을 받았다면서 웃었다. 회갑 즈음에 내 아내가 심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주치의도 수술은 했으나 희망이 없다면서 외국에 나가 있던 아들·딸들에게 시급히 귀국하기를 권고했다. 나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

한미동맹은 자유와 평화를 위한 역사적 사명에서 태어났다

한미동맹은 자유와 평화를 위한 역사적 사명에서 태어났다 중앙일보 입력 2022.06.10 00:34 지면보기지면 정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내 큰딸 H는 1960년대에 미국 유학을 갔다. 대학 기숙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가까이 있는 교회에서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저녁 파티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키가 작고 어려 보이는 편이지만, 가지고 갔던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한국 학생은 혼자뿐이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인사를 했는데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부인이 옆자리로 다가와 “당신이 H양이냐”고 물었다. 한국 유학생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만나고 싶었다면서 친절히 대해 주었다. 그 부인은 내 딸에 관한 얘기와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공식 순서가 진행되었다. 그 부인은..

"과장밖에 못할 신입사원뿐" 70년대 삼성맨들이 준 충격

"과장밖에 못할 신입사원뿐" 70년대 삼성맨들이 준 충격 중앙일보 입력 2022.05.13 00:36 업데이트 2022.05.14 16:45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지면보기지면 정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1970년대는 한국경제 도약의 시기였다. 기업들이 연수원을 갖고 사원교육에 열중했다. 기업체의 중견직원들과 대졸 신입사원을 위한 교육이 그렇게 왕성한 때는 없을 정도였다. 나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강의에 도움을 주었다. 한 번은 삼성그룹 대졸 신입사원을 위한 시간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나에게 고전의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되는 책 10권을 읽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없었다. 5권도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독서를 하지 않으면 과장까지는 시키는 일만 하면 되니까 괜찮겠지만, 그 이상의 직책을..

[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100년을 살아보니』 쓴 김형석 교수] 97세 교수님의 장수 키워드, 조심조심·미리미리

[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100년을 살아보니』 쓴 김형석 교수] 97세 교수님의 장수 키워드, 조심조심·미리미리 중앙일보 입력 2016.12.28 18:31 업데이트 2016.12.29 13:39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배영대 기자 기자가 전화를 했을 때 그는 강연차 마산에 가 있었다. 주말 오후에나 좀 시간이 난다고 했다. 100세 가까이 살고 있으면서도 일주일에 1번 이상 대중 강연을 하며 지내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올해 우리 나이로 97세. 기자를 만나 두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자세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고, 목소리에 힘이 빠지지도 않았다. 노익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60∼70년대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 안병욱 전 숭실대 교수와 함께 ‘철학자 겸 수필가’ 트로이카 시대를 펼쳤던..

사형수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김형석 반성시킨 '사랑의 힘'

사형수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김형석 반성시킨 '사랑의 힘' 중앙일보 입력 2022.05.27 00:34 업데이트 2022.05.27 01:08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오래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경북 안동의 한 고아원에 이(李)라는 성을 가진 소년이 있었다. 18세가 되면서 규정에 따라 고아원을 떠나게 되었다. 이군은 먼저 군 복무를 끝내고 앞날을 개척해 보겠다는 계획으로 군에 입대했다. 제대한다고 해서 주어진 직장은 물론 갈 곳조차 없는 처지여서 그대로 군에 남아 직업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중사까지 진급은 했으나 외롭고 쓸쓸함은 가중되어 갔다. 면회를 오는 사람도 없고 휴가를 나가도 고아원밖에 갈 곳이 없었다. 정을 나눌 사람은 물론 사랑의 줄까지 끊어졌음을 느꼈다. 이..

90세부터는 '아름다운 인생' 살고 싶었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

90세부터는 '아름다운 인생' 살고 싶었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 중앙일보 입력 2022.04.29 00:36 업데이트 2022.04.29 01:11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내가 90까지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욕심을 갖지도 않았다. 두 친구 안병욱·김태길 교수와 같이 열심히 일하자고 뜻을 모았다. 셋이 다 90까지 일했다. 성공한 셈이다. 90을 넘기면서는 나 혼자가 되었다. 힘들고 고독했다. 80대 초반에는 아내를 먼저 보냈는데, 친구들까지 떠났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90대 중반까지는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100세까지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철학계의 선배 동료 중에는 97, 98세가 최고령이었고, 연세대 교수 중에도 100세를 넘긴 이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새 출..

100세가 넘어도 김형석은 묻는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100세가 넘어도 김형석은 묻는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2.04.15 00:35 업데이트 2022.04.15 09:42 지면보기지면 정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나는 왜 태어났는가?” 누구나 스스로 물어보는 과제다. 제각기 인생을 살면서도 대답에는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일찍 이 물음을 가졌다. 초등학생 때, 늦게 집에 들어서는데,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병신 같은 자식이지만, 생일날 저녁에 조밥을 어떻게 먹이겠느냐?”는 탄식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엄마! 나 괜찮아. 지금 영길네 집에서 ‘오늘이 장손이 생일인데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가라’ 고 해서 이팝에 고기도 먹었어. 저녁 안 먹어도 돼”라고 거짓말을 했다. 항상 어머니가 내 꺼져가는 촛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