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9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9] 자귀나무로 백년해로의 축원을 담다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9] 자귀나무로 백년해로의 축원을 담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김후신 ‘압안도(鴨雁圖·기러기와 오리, 18세기)’, 33.0x47.0㎝, 종이에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가 김후신은 생몰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으며 행적도 분명치 않다. 활동했던 시기는 대체로 영조 및 정조 연간의 18세기쯤으로 짐작된다. 이 그림은 기러기와 오리가 자연에서 노는 모습을 그렸으므로 ‘압안도(鴨雁圖)’ 혹은 ‘기러기와 오리’라고 한다. 바위가 코끼리 코처럼 길게 드리워 바닥의 바위로 연결되어 석문(石門)을 만들었다. 석문은 건너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은 신비로움 때문에 옛 그림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오른쪽에는 고목 맛이 나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석문 뒤편으로 자라 올라갔다..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8] 상서로운 동식물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전칭)이영윤 ‘화조도’(16세기 후반~17세기 초반), 비단에 채색, 160.6x53.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왕실의 종친이며 선비 화가인 이영윤(1561~1611)이 그렸다고 전칭(傳稱)하는 화조도다. 물이 흐르는 계곡 풍광을 담은 여덟 폭 병풍에서 남아 있는 두 폭 중 여름 그림이다. 화면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불쑥 나온 바위에서는 하얀 꽃이 피어 있는 자그마한 치자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나뭇가지와 진한 초록 잎을 바탕으로 활짝 핀 꽃과 꽃봉오리가 적절히 섞여서 조화를 이룬다. 실제의 치자 꽃은 아기 주먹만큼이나 크고 우윳빛이 들어간 도톰한 꽃잎 6장이 거의 젖혀져 핀다. 그림 속 치자 꽃잎은 모두 5장이다. 그러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5장..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7] 무슨 소망을 품고 오셨나, 부처님 찾는 귀부인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7] 무슨 소망을 품고 오셨나, 부처님 찾는 귀부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신윤복 '문종심사'(聞鐘尋寺·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 간송미술관 소장 홍살문이 살짝 보이는 조용한 절 입구에 지체 높은 귀부인이 나타났다. 점박이 조롱말을 타고 여종과 말구종까지 대동했다. 먼저 연락이 갔을 터이지만 영접 나온 스님 모습이 더없이 공손하다. 엄청 커다란 바위를 배경으로 작은 돌무더기가 조금씩 서낭당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 귀부인 일행도 잠깐 멈추어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얹어둘 만하건만 그냥 지나친다. 큰스님 만나고 돌아 나올 때 더 간절한 소망을 담을 심산이다. 돌무더기 앞에는 젊은 나무 한 그루가 키만 껑충하게 서 있다. 세월이 ..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6] 단옷날 멱 감는 여인들 훔쳐보는 동자승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신윤복, '단오풍정'(端午風情·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 간송미술관 소장. 이달 14일은 우리의 잊힌 명절 단오다. 오늘은 널리 알려진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端午風情)을 소개한다. 배경은 숲속의 너럭바위를 감싸는 실개천이 흐르고 주위는 숲으로 둘러싸여 만들어진 은밀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 몇이 대담하게 야외에서 낮 목욕을 하러 나왔다. 그러나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숨어서 목욕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동자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네를 타거나 쉬고 있는 세 여인 옆에는 굵은 나무 두 그루가 그림의 중심을 잡고 있다. 그네 타는 여인 옆의 고목나무는 왕버들이다. 버들 종류로서 크고 당당하게 자라며 오래 살아 버들의 왕이란..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5] 서어나무 아래에서 목기 깎기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조영석 ‘나무 깎기’ (18세기 전반), 종이에 수묵담채, 28.0×20.7㎝, 개인 소장. 봄부터 농사일로 지친 옛 농민들은 6월 초 모내기를 끝내면 잠시 한숨 돌린다. 그렇다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때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림은 조선 후기 문인화가 조영석(1686~1761)의 풍속화 사제첩(麝臍帖)에 들어있는 ‘목기 깎기’다. 나무 베기는 대체로 늦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때가 나무 속에 수분이 가장 적어 건조가 빠르고 가공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목기를 만들 때 벤 다음 얼마 동안은 그대로 두어 ‘숨 죽이기’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림 속 두 사내는 작년에 베어둔 나무가 있는 산속으로 들어가 회전축을 돌리면서 작동하는 ‘피대’라..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4] 신선이 된 소년의 퉁소 소리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4] 신선이 된 소년의 퉁소 소리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이인문 ‘목양취소’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0.8×41.0㎝, 간송미술관 소장. 물가를 따라 버들 고목이 늘어서 있다. 주위로는 8마리의 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널찍한 바위 위에 앉아 퉁소 부는 한 소년은 바로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 고기잡이하는 아이와 숲 안에서 엎드린 채 쉬고 있는 소 한 마리가 한가로움을 더한다. 우리의 옛 산수화에는 소나무가 가장 흔하고 다음이 버들이다. 특히 강이나 호수가 포함된 그림에는 반드시 버들이 등장한다. 가느다란 가지가 땅에 닿을 듯 늘어지는 버들은 수양버들과 능수버들 중 하나다. 수양버들은 중국이 고향이고 능수버들은 우리 땅의 토박이다. ..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3] 우물가의 은밀한 이야기, 엿듣는 양반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3] 우물가의 은밀한 이야기, 엿듣는 양반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신윤복, '정변야화'(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cm, 간송미술관 소장 어느 대갓집 뒷문 밖 절벽 아래에 아담한 우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쓰는 우물이 아니라 대갓집 전용 우물이다. 젊은 여인 둘과 담장 밖의 나이든 양반이 그림 속의 등장인물이다. 혜원 신윤복의 정변야화(井邊夜話), ‘우물가의 밤 이야기’다. 우선 절벽에 붙어 자라는 꽃나무부터 알아보자. 바위에는 보랏빛 꽃이 핀 철쭉 고목 세 그루가 옅은 황갈색의 새 잎과 함께 곱게 피어있다. 잎이 돋으면서 함께 꽃 피는 모습은 꽃이 먼저 피는 복사나무와 달리 바로 철쭉의 생태 특성이다. 흙..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2] 배꽃 아래의 강아지 세 마리, ‘아! 졸려!’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이암 ‘화조구자도’(16세기 중반), 종이에 채색, 86.0x44.9cm, 리움미술관 소장. 표정이 서로 다른 귀여운 강아지 세 마리가 작은 바위 앞을 무료하게 지키고 있다. 거의 C자형으로 휜 돌배나무에는 새 두 마리가 앉아 꽃을 향하여 날아드는 나비와 벌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하지만 잡아먹을 마음은 전혀 없어 보인다. 나무줄기의 표면 여기저기에 새까만 혹이 수없이 붙어 있다. 새나 곤충에 의한 상처 흔적이거나, 바이러스 혹은 곰팡이 등에 의하여 생긴 것이다. 시달림을 이겨내고 자라는 나무임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나지막한 언덕에 비스듬히 자라는 돌배나무 고목 밑은 구태여 파보지 않아도, 땅속에는 크고 작은 돌이 많아 물 빠짐이 잘 되는 좋은 땅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금 ..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1] 복사꽃 아래, 선비들의 시 짓기 모임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1] 복사꽃 아래, 선비들의 시 짓기 모임 박상진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4.23 03:00 | 수정 2021.04.23 03:00 이유신 ‘포동춘지’(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종이에 담채, 30.2×35.5㎝, 개인 소장. 조선 후기의 중인 출신 선비 이유신이 그린 포동춘지(浦洞春池)다. 오늘날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 입구에 자리 잡은 ‘성균관’ 뒷동네인 포동의 작은 연못 일대 풍경이다. 봄이 짙어진 어느 날 8명의 선비가 꽃구경 겸 글 짓고 담소를 나누는 단출한 야외 모임을 열었다. 가운데에 앉은 푸른 옷을 걸친 선비가 모임을 주선한 것 같다. 앞에는 지필묵이 놓여 있다. 하지만 종이에 글씨는 없다. 술을 혼자 들거나 대화를 나누며 뒷짐을 ..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0] 능금나무 꽃과 놀란 새들의 사연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0] 능금나무 꽃과 놀란 새들의 사연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4.09 03:00 | 수정 2021.04.09 03:00 신한평 ‘화조도’(1788), 종이에 채색, 124.0x54.2cm 리움미술관 소장 새잎과 꽃이 피기 시작한 능금나무 한 그루와 여러 표정의 새들이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연초록의 어린잎과 짙은 녹색 잎이 섞여 있으며 잎 모양은 긴 타원형에 끝이 뾰족하다. 확대해 보면 굵은 Y자 잎맥이 2~3쌍씩 가운데의 주맥(主脈)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룬다. 잎 가장자리는 둔하고 얕게 팬 톱니도 확인된다. 활짝 핀 꽃은 하얀 다섯 장의 꽃잎을 펼치고 있다. 가운데는 여러 개의 가느다란 노란 꽃술을 정성스럽게 그려 넣었다. 마치 오늘날의 세밀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