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여론 조작 문제를 다룬 김경수 경남지사 1심 재판은 '진술의 신빙성'과 '물증'이 승패를 갈랐다. "댓글 대량 조작 프로그램을 활용한 여론 조작을 김 지사와 공모했다"는 드루킹과 "지지자들의 단순한 선플 운동인 줄 알았다"는 김 지사 진술이 쟁점마다 첨예하게 맞서면서 결과를 점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드루킹 진술을 뒷받침하는 인터넷 접속(로그) 기록, 컴퓨터·휴대폰 자료 등이 대거 유죄 증거로 채택되면서 '김 지사 법정 구속'으로 귀결됐다. 법조계에선 "디지털 증거의 위력을 보여준 판결"이라는 말이 나왔다.
◇스모킹 건이 된 킹크랩 로그 기록
핵심 쟁점은 김 지사가 드루킹 사무실에서 '킹크랩 시연(試演)'을 봤느냐였다. 킹크랩은 포털 사이트의 어뷰징(댓글 조작) 감시 장비를 뚫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자체가 불법인 데다 드루킹이 "김 지사가 직접 시연을 본 뒤 고개를 끄덕여 (사용을) 승인했다" "킹크랩을 활용해 대선 때 온라인 여론을 조작했다"고 하면서 큰 파문을 낳았다. 김 지사는 이에 "킹크랩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맞섰다.
드루킹 측의 '킹크랩 시연·승인' 진술은 작년 초 경찰 수사 때부터 나왔다. 특히 드루킹 지시로 킹크랩 개발과 시연을 직접 담당했다는 우모(닉네임 둘리)씨는 "LG옵티머스 뷰2 휴대폰이 다른 기종보다 액정이 커서 개발·시연에 썼다"는 내용을 포함해 상세한 진술을 했다. 다른 측근들도 "우씨가 휴대폰을 시연 장소로 갖고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줄곧 증언했다. 그런데 '시연 날짜'를 정확히 기억해 내지 못하면서 '물증'을 찾을 수 없었다. 드루킹은 언론에 보낸 옥중 편지에서 "10월경"이라고 했다.
경찰 수사를 넘겨받은 특검팀이 드루킹 사무실(산채) 근처에서 김 지사 운전기사가 신용카드를 썼고, 차량을 운행한 기록을 확인하면서 김 지사가 산채에 머문 시점이 '2016년 11월 9일 저녁 8시~9시 20분경'이라고 특정했다. 특검이 압수한 드루킹 측 자료에서 '킹크랩'이 처음 등장하는 시점도 11월 9일이었다. 뒤이어 네이버 압수 수색에서 드루킹 측 네이버 계정 3개가 김 지사 방문 시각인 저녁 8시 7분 15초부터 8시 23분 53초까지 16분 38초간 접속해 '댓글 공감 클릭과 접속 흔적 지우기' 6단계 동작을 기계적으로 9차례나 반복한 흔적을 찾아냈다. 접속 휴대폰 기종은 우씨 말대로 'LG 옵티머스 뷰2'였다. 이런 부분이 재판부가 김 지사 진술은 허위라는 유죄 심증을 갖게 만든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됐다.
재판부는 이에 더해 드루킹 진술과 '로그 기록' 발견의 선후 관계에도 주목했다. 진술이 먼저 나온 후 그에 부합하는 물증이 드러난 것이어서 김 지사 측 주장처럼 드루킹이 진술을 꿰맞췄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진술이 로그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고 그 로그 기록이 확인되기 전부터 일관돼 충분히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킹크랩 개발 로그 기록도 추가 확인
김 지사 측은 '시연 로그 기록'에 대해서도 "시연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킹크랩 테스트를 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11월 9일 이전의 로그 기록에 대한 증거 조사도 재판에서 이뤄졌다. 특검이 제출하지 않은 증거였다. 그 결과 11월 4~8일 킹크랩 로그 기록이 더 나왔다.
둘리 우모씨는 경찰 조사 때부터 ▷킹크랩 개발 당시 계정 셋 중 먼저 하나를 사용했다 ▷이후 순차적으로 다른 두 계정도 개발에 썼다 ▷개발 완료 후 김 지사 방문 전에 드루킹 등에게 짧게 테스트를 해보였다고 진술했다. 추가로 드러난 로그 기록과 그 진술이 일치했다. 드루킹 측이 계정을 늘려가며 테스트 과정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16분 동안 킹크랩 성능을 확인한 순간이 김 지사 방문 시점과 정확히 겹친 것은 김 지사를 대상으로 한 시연을 제외하고는 달리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김 지사가 킹크랩 브리핑도 받았다"
드루킹 측은 11월 9일 킹크랩 시연에 앞서 김 지사에게 '201611 온라인 정보 보고'라는 문서로 브리핑을 했다고 진술했다. 특검이 압수한 이 문서에는 '네이버 댓글이 수도권 여론을 좌우하므로 킹크랩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부분이 들어있고, 'KingCrab〈극비〉'라는 제목의 별도 챕터가 있었다. 시연 당일 방문객은 김 지사뿐이었다. 재판부는 "해당 문서의 전체적 주제가 킹크랩 개발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고 인쇄된 시점은 오후 4시 55분(시연 3시간쯤 전), 최종 저장 시점은 오후 5시 2분"이라며 "김 지사가 브리핑받은 문건이라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법원 "비밀대화 문자 김경수가 확인했다"
金, 메시지 확인해야 지워지는 메신저 자동 삭제기능 사용
김경수 지사 1심 재판부가 인정한 유죄 물증 중엔 드루킹이 2016년 말부터 작년 초까지 시그널과 텔레그램 같은 보안 메신저로 김 지사에게 전송했다는 '온라인 정보 보고'와 '댓글 작업 기사 목록' 메시지들이 있다.
정보 보고 메시지는 주로 경쟁 후보 진영의 댓글 움직임이나 온라인 여론 동향을 담고 있다. 특히 2016년 12월 28일 자엔 "킹크랩 완성도는 98%"라는 대목이 있고, 2017년 4월 14일 자엔 "현재 킹크랩은 100대까지 충원, 하루 작업 기사량은 300건 돌파"라고 돼 있다. 김 지사가 '고맙습니다^^' 하는 답장을 보낸 적도 있었다.
김 지사는 "메시지들이 중요한 내용도 아니어서 잘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킹크랩'을 본 적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부분 메시지를 확인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김 지사는 시그널 메시지 자동 삭제 기능을 설정해 놨는데 그 기능은 받은 메시지를 확인해야 작동한다"고 했다. 문건이 '삭제'됐다는 자체가 김 지사가 '확인했다'는 얘기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드루킹이 '정보 보고에 대한 김경수의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이라거나 '지금 김경수가 봤다'는 문자를 측근들에게 보낸 점 등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김 지사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근거로 들었다.
김경수측 "1심 판결, 직접 증거는 하나도 없어"
"드루킹 일당 증언 왔다갔다해"
곧 시작될 김경수 지사 2심은 공방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사실상 재판 대책위까지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오는 19일 1심 판결문에 대한 자체 분석 결과를 내놓고 유튜브로 방송할 예정이다.
김 지사 변호인인 오영중 변호사는 언론에 "1심 판결에서 직접 증거는 하나도 없다. 형사재판은 민사와 달리 엄격한 증거에 의해 유죄판결을 해야지 간접 증거로는 유죄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또 "드루킹이나 둘리(우모씨)의 증언은 왔다 갔다 했고 법률적으로 오염된 것도 있다"고 했다. 드루킹 측이 수사 당시 일부 진술을 번복하거나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말 맞추기'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드루킹 측 진술 중 믿기 힘든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예컨대 "킹크랩 시연 장면을 창밖에서 지켜봤다"는 드루킹 측근의 진술이 있었는데, 다른 측근은 "창에 종이가 붙어 있어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다"고 상반된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드루킹과 박모씨는 "김 지사의 보좌관에게도 킹크랩 시연을 보여줬다"고 했지만, 함께 있었다는 김모씨가 "그런 기억 없다"고 진술하면서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그러나 이런 부분은 부차적이어서 객관적 물증으로 뒷받침된 핵심 진술("김 지사에게 킹크랩 프로토타입을 시연했다")의 신빙성을 흔들 수는 없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