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문재인 경제 정책의 명암
2015년 3월 17일 청와대 여야 영수회담에서 문재인 새정연 대표가 ’경제 정책은 실패했고 총체적 위기“라며 ’이런 식으로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몰아붙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득주도 성장과 시장의 복수
4년 전 “경제 실패”… 지금 더 악화
“잘못 인정하고 빨리 사과해야”
‘부두 경제학’ 과연 어느 쪽일까
그런데도 문 대표는 공격의 고삐를 놓치지 않았다. 영수회담 이튿날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과’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야당의 근거 없는 경제 위기론이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며 반박하자 곧바로 재반박에 나섰다. 당 연석회의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아도 비정규직 알바 말고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야말로 경제 실패가 낳은 참담한 결과”라고 연거푸 몰아세웠다. 정청래 당시 최고위원도 옆에서 거들었다. “경제 위기를 여당이 말하면 고통 분담이고 야당이 말하면 경기 위축이냐”며 비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요즘은 최저임금 급등으로 ‘암담한 일자리’라던 비정규직 알바마저 하늘의 별 따기다. 주휴수당을 피하느라 하루 3~4시간짜리 ‘초단기 알바 쪼개기’가 판을 치고 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소득주도 성장은 이미 두 가지의 치명적 결함을 드러냈다. 우선 핵심 논리부터 들어맞지 않고 있다. 이 가설의 골격은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 소비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경제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온갖 정책 수단을 총동원했는데도 1분기 가처분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0.5% 감소했다. 특히 1분위 소득은 2년 연속 줄어들었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일자리 기금을 무차별 살포했는데도 오히려 저소득층의 소득 자체가 감소함으로써 소득주도 성장의 기본 전제가 완전히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또 하나의 치명적 모순은 이 실험의 최대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들이란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2년간 극빈층의 월 평균소득은 95만9000원에서 80만3000원으로 16%나 줄었다. 특히 근로 소득은 40%나 감소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비숙련 저임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여기에다 소득 1분위에서 노인 가구 비중이 줄었다는 것은 자영업 몰락으로 젊은 세대가 대거 빈곤층으로 추락했음을 의미한다. 고용 학살이자 한국 경제의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설익은 경제 실험으로 없는 사람이 더 가난해지고 밑바닥 생태계가 통째로 붕괴되는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보면 한국판 소득주도 성장은 제대로 된 경제 이론이라기보다 사상이나 이념에 가깝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 떠돌던 막연한 운동권 가설과 유럽 좌파들의 노동 중시 개념이 마구 뒤섞여 소득주도 성장이란 문패를 단 것이다. 경제 가설이 이념화되면 아무리 실패해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우상(偶像)이 돼 버린다. 통계청의 충격적인 1분기 소득 통계가 나온 이튿날, 지난 21일 한 진보신문은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추경에 앞서 소득주도 성장을 비롯한 경제 정책부터 바꾸라고 정부에 요구한다. 정부의 철학과 가치가 담긴 정책 기조를 폐기하라는 것은 정권을 내놓고 물러나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받아들여질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소득주도 성장이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정권의 운명과 묶여있는 사상이자 이념이라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아직 소득주도 성장의 최악의 시간은 오지 않았다. 내년 1월부터는 50인~300인의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 버스 대란 정도로 끝날 문제 아니다. 그래서인지 진보 쪽인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은 그제 “소득주도 성장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고 제안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도 경제에 부담을 주는 기존 정책들을 과감하게 철회하는 것으로 경제 회복의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고 주문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재정을 어떻게 더 많이 쏟아부을지만 골몰하고 있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채 대외여건을 탓하고, 정책 실패를 홍보 실패에서 찾으려는 분위기다.
진보 진영은 4년 전 박근혜의 경제 정책을 ‘부두(voodoo) 경제학’ ‘샤머니즘 경제학’이라 조롱했다.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믿는 주술·악마 숭배의 부두교처럼 제대로 된 근거 없이 비현실적·비과학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유사 경제학’에 대한 경멸적 호칭이다. 박근혜 정부가 오지도 않을 ‘낙수효과’의 주문만 외우는 ‘무당 경제학’이라고 비꼰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소득주도 성장은 어떻게 불러야 할지 궁금하다. 저소득층부터 올라오는 ‘분수효과’는커녕 아예 물 자체가 말라버렸다. 어디를 둘러봐도 4년 전보다 더 나은 경제지표는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소비지표는 좋은데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해 안타깝다”며 국민들의 염장을 지른다. 어려움에 빠진 중소기업인들을 앞에 놓고 “정책 효과가 당장 체감되지 않겠지만 우리 경제는 거시적으로 성공으로 가고 있다”는 주문을 외운다. 부두 경제학이란 딱지를 어느 쪽에 붙여야 할지 따지는 것은 멋쩍은 일이다. 과연 4년 전의 문재인 대표와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인물인지 헷갈릴 따름이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