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28] '좋은 곳' 아닌 '없는 곳'이라서 꿈꾸는 유토피아

bindol 2020. 6. 2. 05:12

블라디미르 타틀린,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비의 모형, 1919~20년.

 

구소련의 화가이자 건축가, 디자이너였던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Tatlin·1885~1953)의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비'는 '유토피아', 즉 이상 사회를 형상화한 대표적 조형물로 손꼽힌다. '제3인터내셔널'이란 흔히 '코민테른'이라고 알려진 공산주의 국제연합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어낸 레닌이 사회주의의 국제적 확산을 위해 조직했다. 타틀린은 코민테른의 본부이자 기념비로서 이 탑을 구상하여 사진에 보이는 5m 높이의 모형을 만들었으나 실제 건물이 만들어지지는 않았고 모형 또한 남아있지 않다.

타틀린이 이 탑을 구상한 지 100년이 되었으나 현대 기술로도 실현은 어려울 것이다. 400m 높이까지 휘몰아치듯 상승하는 나선형 탑 내부에는 기하학적 형태의 건물들이 매달려 있어야 한다. 제일 아래에는 초대형 회의실이 정육면체 구조물 안에 자리를 잡고, 그 위에 간부 사무실이 있는 피라미드, 그 위에 뉴스 센터가 있는 원통, 제일 꼭대기에는 라디오 설비를 갖춘 원구가 계획됐다. 이미 현실성이 떨어지는 형태인데, 더구나 육면체는 일 년, 피라미드는 한 달, 원통은 하루를 주기로 한 바퀴씩 회전한다는 것이다. 혁명과 전쟁을 막 지낸 신생국에 이만한 유리와 강철, 기술력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겉과 속이 똑같은 투명한 구조에 대중과 지도층과 정보가 정확하게 맞물려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열망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유토피아'의 그리스어 어원을 따지면 '좋은 곳'이기도 하고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상향'이란 어쩌면 좋은 곳이기 때문이 아니라 없는 곳이기 때문에 계속 꿈을 꾸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2/20200602000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