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일사일언] 수능 금지곡

bindol 2020. 6. 2. 05:16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수능 등 큰 시험을 앞둔 사람들이 듣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가사가 머릿속에 맴돌며 시험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곡들이다. 노래가 계속 귀에 맴도는 '귀벌레 증후군'이라나. 빠른 템포와 반복적인 멜로디가 굉장한 중독성을 만든다는 게 요지다. 대표적으로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샤이니의 '링딩동', 레드벨벳의 '짐살라빔'이 악명 높은 수능 금지곡으로 꼽힌다.

대중가요보다 클래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안심할 순 없다.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가 그렇다. 제목은 생소할 수 있어도 첫 소절만 들으면 모두가 아는 곡이다. 그만큼 멜로디가 강력하다. 참고로 '볼레로'는 조금 젊은 친구들에겐 '디지몬 어드벤처'의 배경음악(BGM)으로 더욱 알려져 있다. '디지몬 어드벤처'는 2000년대 방영돼 선풍적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이다.

문제의 '볼레로'는 크게 두 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인상적이고 리듬감 넘친다. 두 개의 주제가 악기의 조합과 규모만 달리해 약 15분 동안 계속된다. 정말 착실하게 곡을 쌓아 올린다.

 

사실 나의 학창 시절에도 최고로 위험한 곡은 '볼레로'였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곤 절대 듣지 않았다. 무한 반복되는 주제도 문제지만, 주제 뒤로 들리는 스네어드럼은 더 큰 문제다. 시작부터 끝까지 변화가 거의 없다. 스네어드럼으로 시작해 스네어드럼으로 끝나는 것이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스네어드럼 리듬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다.

이렇게 치명적인 '볼레로'에도 다행히 해독제는 존재한다. 중독되는 멜로디를 머릿속에서 중화할 수 있다. 라벨은 해독제를 곡의 마지막에 숨겨뒀다. 곡을 끝까지 다 듣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끝 무렵 라벨은 극적인 전조와 변형을 통해 멜로디를 비틀어버린다. 이전의 멜로디가 잊힐 만큼 강력하게! 15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곡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리고 중독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비로소 해방의 순간을 맞이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2/20200602000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