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文대통령 행사 4번 '동원'되고 팽당한 이용수 할머니

bindol 2020. 6. 4. 05:12

[김창균 칼럼]
국빈 만찬 '대표 손님' 세일즈… 3·1절엔 대통령 부부 옆자리

문 대통령, 일본군 위안부 피해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연합뉴스

 

 

 

김창균 논설주간

 

'아이 캔 스피크, 이용수 할머니가 청와대 간다'. 2017년 11월 7일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국빈 만찬을 예고하는 기사였다. 위안부 피해자의 미국 의회 증언을 소재로 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인물 이용수 할머니를 초대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세일즈 포인트였다. 만찬 과정을 전한 인터넷 언론은 "임종석 비서실장이 이용수 할머니를 찾아 인사드리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내외를 영접하느라 할머니를 직접 모실 수 없었던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대신 보내 세심하게 챙기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취임 후 처음 미국 대통령을 맞이한 순간조차 위안부 할머니를 잊지 않는 대통령의 마음 씀씀이가 절절하게 전해진다.

인터넷에는 '문재인, 이용수 투 샷' 사진이 넘쳐난다. 문 대통령이 대선에 처음 도전한 2012년 '대구·경북 위안부 추모의 날'이 가장 앞선 시점이다. 2017년 대선 전날 마지막 집회 때도 할머니를 단상으로 모셨다. 대통령 취임 후 공식 행사장에 초청한 것도 네 차례나 된다. 늘 이용수 할머니가 초점이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때 이용수 할머니와 '아이 캔 스피크' 배우 이제훈씨가 대통령 내외와 나란히 앉았다. 문 대통령이 이용수 할머니를 맞이하는 자세도 남다르다. 의례적인 악수 따위는 없다. 다정하게 끌어안거나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안내한다.

그 할머니가 "윤미향은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고 한다. "30년 동안 할머니들을 이용만 해먹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제동원 위안부, 근로자 가족모임인 태평양 유족회도 "이용수 할머니 말이 다 맞는다"고 했다. 윤씨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위안부 활동 때문인데, 위안부 할머니들은 윤씨에게 자격이 없다고 한다.

2018년 1월 4일 위안부 피해자 초청 오찬 때 문 대통령은 "할머니 뜻에 어긋나는 위안부 합의를 대통령으로서 사과한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한·일 합의를 대신 사과한 것이다. 그리고 그해 11월 한·일 합의에 따른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다. 사실상 합의 파기나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국민에게 여러 차례 사과했다. 제주 4·3 사태, 베트남 국군 참전, 재일동포 간첩 사건, 5·18과 부마 항쟁 강제 진압…. 모두 과거 정권 때 일이다. 껍데기는 사과지만 알맹이는 전 정권 비난이다. 문 대통령은 "할머니 뜻에 어긋나는" 여당 의원 선출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는커녕 바로잡지도 않는다. 대통령이 집권당 의원을 사퇴시키는 게 국가 간 합의 파기보다 더 어려운 일인가.

문재인 정부는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증언한 8월 14일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 2018년 8월 14일 첫 기념식에도 이용수 할머니가 초청받았다. 그때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마음의 상처가 아물 때 비로소 해결된다"고 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요즘 윤미향씨 때문에 아프다. "바보같이 당하면서 여태까지 말도 못 했나 싶어 자다 일어나 펑펑 울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 상처를 못 본 척한다. "청와대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한다.

할머니는 대통령이 정말 위해준다고 느꼈을 것이다. 청와대 행사에 네 번이나, 그것도 주빈으로 불러주고, 친어머니처럼 살갑게 맞아줬다. "할머니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겠다"거나 "할머니의 상처를 아물게 하겠다"는 대통령 다짐도 곧이곧대로 믿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의 주인은 윤미향씨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대통령이 '피해자 중심 해결'을 강조하면서 할머니들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늘 말해오지 않았는가. 할머니는 대통령이 윤미향씨 대신 자기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다. 순진한 착각이었다.

문 대통령에게 위안부 운동은 반일(反日) 비즈니스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반일만큼 확실하게 남는 장사는 없다. 그 영업 파트너는 윤미향씨가 대표를 맡아온 정대협·정의연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잘 팔리는 대표 상품이었다. CEO도 대표 상품도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답 은 정해져 있다. 문 대통령이 적폐 청산을 해온 윤석열 검찰총장을 '우리 총장님'이라고 부르다가, 조국 법무장관에게 손을 대자 곧장 개혁 대상으로 몰아간 것과 같은 이치다. 할머니는 문 대통령이 자신을 네 번이나 주빈으로 모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은 '위안부 할머니를 성심성의껏 모시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 구현을 위해 네 번 조연배우로 동원됐을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3/20200603049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