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어제 페이스북에 당원들의 축하 편지라며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편지에는 이런 글들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윤미향 의원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항상 응원하겠다. 지치지 말기, 포기하지 말기, 끝까지 함께하기."
이중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부분은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을 인용한 것이다. 올해 일흔다섯 살인 나태주 시인은 충남 서천 출신으로 공주사범대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풀꽃은 나 시인의 대표작으로 2012년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외벽 광화문 글판에도 내걸렸던 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석 줄짜리 짧은 시다.
이 시를 읽노라면 햇빛에 그을려 얼굴이 까매진 코흘리개 꼬마를 바라보고 있는 흰머리 성성한 시골 선생님이 떠오른다. 꾀죄죄하고 울퉁불퉁해 보이는 아이도 찬찬히 관찰하고 안아주다 보면 이 우주의 사랑을 듬뿍 받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신작로 가장자리나 논두렁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처럼 얼핏 하찮아 보이는 것도 보는 사람이 애정을 갖고 끈기 있게 사랑해주면 이 세상 무엇보다 귀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윤미향 의원의 지지자가 보내온 시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 아닌 지지자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지지자가 그런 시를 보내오는 것과, 그 편지를 받은 윤미향 의원이 세상에 대놓고 자랑질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윤 의원은 지금 검찰에 고발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기부금 유용 의혹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이렇게 말할 처지가 아니다. 한마디로 ‘공감능력 제로’ 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두 개를 더 썼다. ‘풀꽃2’는 이렇게 돼 있다. ‘이름만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이 넉 줄이 시 ‘풀꽃2’ 전문(全文)이다. 앞 시와 마찬가지로 매우 짧다. 이름을 알면 이웃이요, 색깔을 알면 친구요, 모양을 알면 연인이 된다고 하는, 새로울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사실을 석 줄 나열해 놓은 다음, 마지막 줄에 이렇게 썼다. ‘아, 이것은 비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웃과 친구를 사귀고 서로를 아끼는 것이 나의 행복에도 가장 소중하다는 것은 어디 고귀한 책속에 적혀 있는 엄청난 비밀도 아니요 그냥 평범하고 또 평범한 삶의 지혜일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것이 마치 엄청난 비밀이라도 되는 듯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나태주 시인이 마지막 줄에 그걸 깨우치듯 ‘아, 이것은 비밀’이라면서 독자의 손등을 반어법적으로 슬쩍 꼬집어 준 것이다. 비밀이 아닌 것을 비밀이라면서 눈을 찡긋하는 재치가 이 시를 펄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다.
나태주 시인이 쓴 세 번째 풀꽃 시 ‘풀꽃3’은 이렇게 돼 있다. 역시 아주 짧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할아버지뻘 되는 선생님이 코흘리개 아이한테 어깨를 쭉 펴라고 다독이는 시라고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절망에 빠져 있는 청년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시이기도 한 것이다. 나태주 시의 특징은 아주 간결하면서도, 그 짧은 서너 줄 속에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 넣은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말(言)의 사원(寺)’이라는 시(言+寺=詩)를 건축할 때는 핵심 기둥을 멀찍이 듬성듬성 세워 놓아야만 독자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명(共鳴)과 떨림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나태주 시가 갖는 문학적 진실이란, 시의 언어는 뭔가를 ‘더할수록’ 울림이 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더더기를 ‘뺄수록’ 여운이 크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그걸 모른다. 자꾸 많은 말들을 뱉으려고 한다. 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인에게 진짜 숨기고 있는 범행이 있는지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가 손사래를 치고 엉뚱한 말을 갖다 붙이면서 조급함을 보이면 의혹이 사실일 경우가 많다. 윤미향 의원도 지금 조급할 것이다. 목이 탈 것이다. 마이크 앞에 서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질 것이다.
이런 조급한 사람들은 나태주 시인의 ‘내가 너를’ 이란 시는 잘 공감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내가 너를’이란 시는 이렇게 돼 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