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노트북을 열며] 통계는 정치다

bindol 2020. 6. 4. 05:33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통계는 과학이다. 통계학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다. 사실 통계가 과학의 영역에 들어온 지는 얼마 안 됐다. 현대 통계학의 창시자 칼 피어슨(1857~1936년) 이후의 일이다. 피어슨은 ‘과학이 언어라면 통계는 문법’이란 내용의 책 『과학의 문법』으로 유명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이 책을 읽으며 물리학자의 꿈을 키웠을 정도다. 피어슨 덕에 통계는 과학의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지만 불과 100년 남짓이다.

그 이전 통계는 정치의 영역이었다. 통계 과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는 유구하다. 통계(statistics)의 어원 자체가 이탈리아어 정치 지도자(statista)다. 인구조사(census)도 로마시대 감찰관(censor)에서 유래했다. 영국과 독일 학계는 ‘누가 통계학의 아버지냐’를 두고 논쟁 중인데, 영국 측 주자 윌리엄 페티(1623~87년)의 대표 저서가 『정치 산술』이다. 독일 측 주자 고트프리트 아헨발(1719~72년)의 대표 저술도 『국가학』이다.

노트북을 열며 6/4

시대는 달랐지만 이 아버지들의 주장은 같았다. 좋은 정치를 하려면 좋은 통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살벌할 만큼 냉철하게 국가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통계를 바탕으로 올바른 정치를 펼치라고 했다. 통계를 통치자 입맛대로 뜯어고치고 매만지란 얘기가 아니다. 물론 그런 역사가 없진 않지만 통계 조작의 유혹에 빠진 정권의 끝은 늘 좋지 않았다.

 



통계청은 지난달 4일부터 25일까지 10건의 기사 해명자료를 쏟아냈다. 이 기간 나온 통계 보도자료 개수(10건)와 맞먹는다. 대부분(8건)이 ‘가계동향조사’ 관련 내용이다. 이 통계엔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를 보여주는 양극화 지표가 담겼다. 소득을 늘려 성장을 주도한다는 이른바 ‘소주성 정책’을 기치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에 뼈 아픈 약점이 될 수 있는 통계다.

문재인 정부는 가계동향조사 관련 의혹 속에 2018년 통계청장을 갈아치웠다. 이후 표본집단과 조사 방식 개편에 속도가 붙었다. 지난달 새 가계동향조사가 처음 공표됐다. 지난해 분기별 양극화 지표가 개편 전보다 일제히 개선됐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시계열이 단절되는, 유례가 드문 통계 참사도 함께였다. 관련해 언론 지적이 쏟아졌고 통계청도 반박하는 해명자료를 거듭 냈다. 논란의 진실이 어디 있든 통계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통계를 현 정부에 대한 경제 성적표라 보는 건 큰 착각이다. 한국 경제라는 환자에 대한 진단서다. 어떤 문제가 생겼고, 어디를 치료해야 한다고 알리는 경고문이다. 통계는 정치다. 이 명제의 무서움을 잊어선 안 된다.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출처: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 통계는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