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광(柳子光), 조선 예종 때 남이 장군의 '역모'를 고발해 공신이 됐고, 조선 시대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일으킨 주역이다. 흔히 그를 간신으로 분류하지만, 당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를 단순히 간신으로 분류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사림의 영수(領袖)인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스승 김종직이 지었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포함시켰다. 이를 당상관 이극돈이 찾아내 유자광에게 보이자 유자광이 일을 크게 확대하는 바람에 김일손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처형됐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무오사화다.
당시 사건만 놓고 보면 유자광은 종묘사직을 위한다는 명분에선 정당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김종직의 글은 항우에게 죽은 의제(義帝)를 추모하는 글이지만, 실은 의제를 단종에 비유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한 것이라서 왕실 입장에서 보자면 김종직의 글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자광을 단순히 간신의 범주에 넣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그가 충신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저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 같은 사건을 잘 활용한 인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고양이 목에 누구보다 먼저 방울을 달아 자신의 출세를 도모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간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충신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 정치에서 이런 인물을 찾자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설훈 의원을 당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설훈 의원은 가장 먼저 "윤석열 검찰총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선창했다. '5선 의원'이라는 중망(重望)이 무색할 지경이다. 과거 그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한 로비스트로부터 20만달러를 받 았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것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그로 인해 피선거권이 박탈되기도 했다. 진중권씨의 촌철살인을 인용치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까 궁리하다가 뾰족한 수가 없으니 구멍에서 목만 내놓고 조 짜서 교대로 고양이 물러가라고 찍찍거리는 상황이다." 어쩌면 설 의원은 유자광만큼도 안 되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