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322] 탐득과수 (貪得寡羞)

bindol 2020. 8. 3. 05:5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월출산 아래 백운동 별서정원은 이담로(李聃老·1627~?)가 처음 조성한 이래 13대를 이어 가꿔온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다. 다산이 제자 초의를 시켜 그린 그림이 남아 있고 다산 본인도 친필로 백운동 12경을 노래해 예찬했다. 김창흡, 김창집 형제의 8경시가 남아 있고 그 밖에 쟁쟁한 문인들이 8경 또는 10경으로 앞다퉈 예찬했던 호남의 대표적 별서다.

다행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왔다. 마당을 관통해 흐르는 유상구곡(流觴九曲)은 비원과 포석정 외에 민간 정원으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바로 곁에 보조국사 지눌, 대각국사 의천, 원묘국사 요세, 진감국사 혜심 등 고려 4국사의 체취가 남은 백운사 옛터가 덤불 속에 묻혀 있다. 당대에 이름 높던 별서요, 고려 때 향기 짙은 절터다.

2014년 봄 강진군에서 이 유서 깊은 별서정원 인근에 대규모 야영장을 조성해 관광지로 개발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놀라 난개발을 막자고 지난 4월 서둘러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을 펴냈다. 서문에 굳이 '없는 것도 새로 만드는 판에 있는 것을 지켜 보존하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느냐'고 썼다. 역사적으로 뜻깊은 공간을 잘 보존해달라는 당부를 간절하게 담았다.

책 출간 후 석 달이 못 되어 다시 찾은 백운동 계곡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백운동의 아래위 계곡은 불도저와 포클레인으로 참혹하게 파헤쳐져 더 이상 옛 모습을 회복할 수 없게 변했다. 하늘이 안 보여 대낮에도 어둡던 동백숲과 대숲에는 승용차가 교차해 지날 만큼의 너른 길이 났다. 수백년 계곡을 지켜온 바위는 차곡차곡 쌓여 축대가 되었다. 가슴이 찢기는 아픔과 공분을 느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나랏돈 들여 강 진군의 의뢰를 받은 조경업자의 포클레인에 비경의 숲이 허망하게 사라졌다.

'회남자(淮南子)'에서 말했다. "지금 세상은 나무람을 잘 참고 욕됨을 가벼이 보며 얻기만을 탐하면서 부끄러움은 적다(當今之世, 忍言句而輕辱, 貪得而寡羞)." 누가 욕해도 내게 이익만 생긴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용의가 있다. 돈이 된다는데 그깟 부끄러움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아! 아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07/20150707038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