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인 고적(高適)의 '휴양수창대판관(睢陽酬暢大判官)'은 이렇다. "오랑캐는 본래부터 끝이 없으니, 회유함이 하루아침 일이 아닐세. 주려 착 붙을 때는 쓸 만하다가, 배부르면 떠나가니 어이 붙들까.(戎敵本無厭,羈縻非一朝. 飢附誠足用,飽飛安可招.)"
서융(西戎)은 초원에 야영하며 사는 족속으로 사납고 거칠어 좀체 신하로 복속되는 법이 없다. 곡식이 늘 부족해 먹을 것이 없으면 중원에 붙어 순종하지만 일단 배가 부르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통제를 벗어날 뿐 아니라 중원에 큰 위협을 가하곤 했다. 시 속의 기부포비(飢附飽飛)는 배고프면 붙고 배부르면 날아간다는 의미다. 형세가 여의치 않으면 숙이고 들어와 혜택을 구걸하고, 만만하다 싶으면 어느새 등을 돌려 해코지를 한다.
두보(杜甫)는 '경급(警急)'에서 위 구절을 받아 변방에서 패전한 고적을 풍자했다. "화친함이 못난 계획인 줄 알지만, 공주께서 돌아올 곳이 없다네. 지금은 청해를 누가 얻었나. 서융은 배부르면 달아나는 걸.(和親知拙計, 公主漫無歸. 靑海今誰得,西戎實飽飛.)" 금성공주(金城公主)를 토번(吐蕃)에 시집보내면서까지 화친을 꾀했지만 결국은 토번이 청해(靑海) 땅을 침략해 차지해버린 옛일을 지적해 말했다.
다음은 조선 중기 장유(張維)가 나응서(羅應瑞)의 '견분(遣憤)'시를 차운한 3수 중 첫 수다. "듣자니 서융이 또 포비를 하였다니, 조정 정책 모두가 올바르지 않아설세. 저 못난 벼슬아치 종내 무슨 보탬 되리. 강호의 포의(布衣) 보기 부끄럽기 짝이 없네.(聞說西戎更飽飛, 漢庭籌策總成非. 迂疎肉食終何補, 愧殺江湖一布衣.)"
나응서가 시국을 보고 분을 못 참아 쓴 시에 동감한 내용이다. 후금이 다시 준동해 국경을 위협한다는 소식에 조정 의 무능력한 대응을 질타했다. 포비는 일종의 '먹튀'다. 배고프다며 협박할 때마다 달래서 먹을 걸 내주니, 덕화에 감화되기는커녕 아쉬우면 회유되는 척 잇속을 챙긴 후 뒤돌아서 다시 능멸한다. 문제는 해결되는 법 없이 반복되어 쌓인다. 공주를 내 줘도 안 되고 식량으로 달래도 소용없다. 고분고분해졌나 싶어 손을 내밀면 어느새 칼을 휘두르며 찌르자고 달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