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331] 처세육연 (處世六然)

bindol 2020. 8. 3. 06:16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박병호 선생의 서예전 도록을 보는데 명말(明末) 최선(崔銑)이 왕양명(王陽明)에게 주었다는 처세훈이 새삼 눈에 띈다. 경주 최부자 댁의 가훈이기도 하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선생의 번역에 따라 옮기면 이렇다. '스스로는 세속에 집착하지 않고, 남에게는 온화하고 부드럽게. 일을 당하면 단호하고 결단성 있게, 평소에는 맑고 잔잔하게. 뜻을 이루면 들뜨지 말고 담담하게, 뜻을 못 이루어도 좌절 없이 태연하게(自處超然, 處人譪然. 有事斬然, 無事澄然. 得意澹然, 失意泰然).'

스스로 자처함에 초연키는 어렵다. 남과 대할 때 마냥 푸근하기도 쉽지가 않다. 일이 생기면 칼로 베듯 과단성 있게 처리해야 하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때를 다 놓친다. 일이 없을 때는 공연히 사부작거려 없을 일을 만들지 말고 해맑음을 지켜야 복이 오래간다. 아무래도 여섯 가지 중 끝의 두 가지가 제일 어렵겠다. 작은 득의에도 한없이 나부대다가 결국 제 발등을 찍고서야 끝이 난다. 잠깐의 실의 앞에 한숨으로 땅이 꺼지고 세상이 곧 끝날 듯이 군다. 태연하고 늠연한 기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반대로 해도 안 된다. 자처함을 애연(�然)하게 하고 남에게 초연(超然)하면 일을 그르친다. 일이 있을 때 징연(澄然)하고 일이 없을 때 참연(斬然)하니 뒷감당이 어렵다. 득의 앞에 태연(泰然)하고, 실의에 담연(澹然)하면 회복이 힘들다.

 

 

청말 좌종당(左宗棠)이 무석매원(無錫梅園) 기둥에 썼다는 대련 여섯 구도 함께 실렸다. 역시 선생의 번역에 따라 소개한다. '소원은 높게 갖고 구하며, 연분은 뜨겁지 않게 맺고, 복은 과욕하지 않는다. 높은 곳을 골라 서고, 평평한 곳에 앉으며, 넓은 곳으로 향해 간다(發上等願, 結中等緣, 享下等福, 擇 高處立, 就平處坐, 向寬處行).'

앞의 세 구절은 말한다. 시선은 높게, 인연은 분수에 맞게, 복은 오히려 낮춰서. 뒤 세 구절은 이렇다. 높이 올라 멀리 보고, 몸가짐은 겸손하며, 행함은 공명정대하게. 세상은 어떤가? 하등의 돈 벌 궁리에 골몰해 평탄한 대로를 두고 좁고 음험한 길을 간다. 상등의 바람을 품은 적이 없으니 높은 곳에 우뚝 서볼 일이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08/20150908042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