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답응지서(答應之書)'에 "네 쇠뿔이 아니고야 내 집이 어찌 무너지랴(非汝牛角, 焉壞我屋)"란 속담을 소개하고 "이는 남을 탓하는 말(此咎人之辭也)"이라고 풀이했다. 정약용도 속담 모음인 '백언시(百諺詩)'에서 "네 쇠뿔이 아니고야 내 담이 어찌 무너지랴(匪爾牛角, 我墻何覆)"를 인용했다. 그 아래 달린 풀이 글은 이렇다. "네가 비록 네 잘못이 아니라 해도 네가 아니면 이런 일은 없었으리란 말이다(言爾雖曰非我有咎, 非爾無此患也)" 예전에 자주 쓰던 표현임을 알겠다.
말짱하던 담장이 허물어졌다. 이게 웬일인가? 놀라 나가보니 마침 옆집 소가 어슬렁거리며 지나간다. 그는 옆집을 찾아가 따진다. "네 소가 들이받아 내 담이 무너졌다. 당장 고쳐 놓아라." "그럴 리가?" "그렇지 않고야 멀쩡한 내 담이 왜 무너지나?" "증거는?" "무너진 담이 증거다." "소가 어떻게?" "그건 네 소한테 물어라. 근처엔 네 소밖에 없었다."
묵은 담이 제풀에 무너졌고 소는 그때 근처에 있었을 뿐인데 소 주인이 옴팡 뒤집어쓰게 되었다. 우각괴장(牛角壞墻), 소뿔에 담장이 무너졌다는 속담은 이래서 나온 말이다. 소뿔이 아무리 세다 해도 담장을 어찌 허무는가? 그래도 상황 논리로 뒤집어씌워 우기면 달아날 방법이 없다. 세상에 꼼짝도 못하고 뒤집어쓰는 잘못이 이런 종류다.
16세 대만 소녀는 오락 프로에서 제 나라 국기를 흔들었다. 그럼 그녀가 대만 국기 말고 무엇을 흔들어야겠는가? 문제가 안 될 일에 한 늙은 가수가 억지 시비를 걸어 큰 문제가 되었다. 중국 시장이 막힐까 겁난 소속사 대표는 제 입으로 이런 것이 문제 될지 생각도 못했 다고 해놓고 자신이 교육을 잘못 시킨 탓이라며 소녀 등을 떠밀어 사과를 시켰다. 그것이 또 대만 총통 선거의 마지막 판세를 뒤흔들었다.
소는 담장 밑을 지나갔고 그때 마침 담장이 무너졌다. 그렇다고 무너진 담장을 세워내라고 윽박지를 일인가? 잘못 가르쳐서 미안하다고 할 일인가? 수척해진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보니 어른으로 창피하다. 말이 무섭고 사람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