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환(李森煥·1729~1814)이 정리한 '성호선생언행록'의 한 단락. "여행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行役妨學). 길 떠나기 며칠 전부터 처리할 일에 신경을 쓰고 안장과 말, 하인을 챙기며 가는 길을 점검하고 제반 경비까지 온통 마음을 쏟아 마련해야 한다. 돌아와서는 온몸이 피곤하여 심신이 산란하다. 며칠을 한가롭게 지내 심기가 겨우 안정된 뒤에야 다시 전에 하던 학업을 살필 수가 있다. 우임금도 오히려 촌음의 시간조차 아꼈거늘 우리가 여러 날의 시간을 헛되이 허비한다면 어찌 가석하지 않겠는가?"
공부하는 사람은 여행조차 삼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일상의 리듬이 한 번 깨지면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 공부는 맥이 끊기면 다시 잇기 어렵다. 애써 쌓아가던 공부가 제자리를 잡기까지 다시 여러 날을 허비해야 하니 금쪽같은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 이삼환은 이 말 끝에 "이 때문에 사람들이 선생의 학문이 주로 주정궁리(主靜窮理)에 있음을 알았다"고 적었다. 주정궁리란 고요히 내면에 침잠해서 따지고 살펴 궁구하는 공부를 말한다.
반대로 홍길주(洪吉周·1786~1841)는 '수여방필(睡餘放筆)'에서 "문장은 다만 독서에 있지 않고, 독서는 다만 책 속에 있지 않다. 산천운물(山川雲物)과 조수초목(鳥獸草木)의 볼거리와 일상의 자질구레한 사무가 모두 독서다(文章不但在讀書, 讀書不但在卷帙. 山川雲物鳥獸草木之觀, 及日用�細事務, 皆讀書也)"라고 했다. 책 읽는 것만 공부가 아니고 일상의 일거수일투족, 눈과 귀로 들어오는 모든 것이 다 독서요, 공부거리라고 보았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여방필'에 비슷한 노정이었음에도 전혀 달랐던 두 차례의 여행길을 비교 한 흥미로운 글을 남겼다. 3형제가 1박 2일 동안 가마를 타고 새벽에 출발해 이튿날 석양에 돌아온, 그리고 갈 때마다 비를 만났던 두 차례의 여행길이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천하의 지극한 문장이었다면서 두 차례 여행길을 세세하게 비교했다.
성호 이익은 여행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 했고, 홍길주는 여행이 그 자체로 공부라 했다. 누구 말이 옳을까? 둘 다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