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355] 후피만두(厚皮饅頭)

bindol 2020. 8. 3. 07:39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당나라 때 유종원(柳宗元)이 한유(韓愈)의 문장을 평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남의 것을 본뜨거나 슬쩍 훔쳐[模擬竄竊], 푸른색을 가져다가 흰빛에 견주고[取靑嫓白], 껍질은 살찌고 살은 두터우며[肥皮厚肉], 힘줄은 여리고 골격은 무른데도[柔觔脆骨] 글깨나 한다고 여기는 자의 글을 읽어보면 크게 웃을 수밖에 없다." 글재간만 빼어나고 기운이 약한 글을 나무란 내용이다. '송음쾌담(松陰快談)'에 나온다.

유종원이 제시한 속문(俗文)의 병폐를 차례로 짚어보자. 먼저 모의찬절(模擬竄竊)은 흉내 내기와 베껴 쓰기다. 글은 번드르르한데 제 말은 없고 짜깁기만 했다. 다음은 취청비백(取靑嫓白)이다. 푸른빛과 흰빛을 잇대 무늬가 곱고 아롱져도 실다운 이치는 찾기 힘든 글이다. 다음은 비피후육(肥皮厚肉), 즉 껍질은 두꺼워 비곗덩어리고 그 속의 살마저 퍽퍽해 아무 맛이 없는 무미건조한 글이다. 마지막은 유근취골(柔觔脆骨)이다. 힘줄이 여리고 뼈는 물러서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휘청 나자빠지는 글이다.

태학사(太學士) 진공순(陳公循)이 과거 시험장에 감독차 나갔다. 감독관들이 채점을 둘러싸고 의견이 제각각이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답안지를 가져다가 한 차례 훑어보더니 "이건 죄다 후피만두(厚皮饅頭)로군!"하고는 내던져 버렸다. 생긴 것은 만두인데 차마 먹기가 괴롭다. 글이 정곡을 꽉 찔러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해야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조차 없게 썼다는 얘기다.

옛 사람은 겉보기만 그럴싸할 뿐 정작 읽을 수 없는 글을 후피만두에 견주었다. 껍질이 수제비처럼 두꺼운 만두가 후피만두다. 모양만 만두지 부드러운 식감 은 간데없고 밀가루 반죽 덩어리가 밀랍처럼 씹힌다.

'서학집성(書學集成)'에도 같은 설명이 보인다. "세상 사람 중에 글씨 획을 두텁게 쓰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후피만두와 다를 바 없으니 먹어 보면 분명 맛이 없고 생김새만 봐도 속물임을 금세 알 수 있다." 껍질이 두꺼운 만두는 한눈에 봐도 맛이 없어 보인다. 꼭 입에 넣어 봐야 아는 것이 아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01/20160301023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