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357] 지도노마(知途老馬)

bindol 2020. 8. 3. 07:41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제나라 관중(管仲)과 습붕(隰朋)이 환공(桓公)을 모시고 고죽성(孤竹城) 정벌에 나섰다. 봄에 출정해서 겨울이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회정 도중 멀고 낯선 길에 군대가 방향을 잃고 헤맸다. 관중이 말했다.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가라." 늙은 말이 앞장서자 그를 따라 잃었던 길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시 산속을 가는데 온 군대가 갈증이 심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물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겨울에는 산 남쪽에 살고, 여름에는 산 북쪽에 산다. 개미 흙이 한 치쯤 쌓인 곳에 틀림없이 물이 있다." 그곳을 찾아 땅을 파자 과연 물이 나와 갈증을 식힐 수 있었다.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편에 나온다.

늙은 말은 힘이 부쳐서 아무 쓸모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군대가 길을 잃어 헤맬 때 앞장서서 길을 열었다. 사실 늙은 말이야 저 살길을 찾아 달려간 것일 뿐이다. 그 길이 살길인 줄을 알았던 관중의 슬기가 아니었다면 전쟁에 이기고도 큰 곤경에 처할 뻔했다. 개미의 습성을 눈여겨보아 군대를 갈증에서 건진 습붕의 지혜도 귀하다.

 

 


공천 정국을 둘러싼 정치권의 풍경이 한창 소란스럽다. 곁에서 보기에 민망하고 딱하다. TV에 비치는 표정부터 하나같이 살기가 가득하다. 전투력이 떨어진다고 늙은 말은 죄 버리고, 전투력이 있어도 제 편이 아니면 떨군다. 칼자루 쥔 자는 당해 봐라의 서슬로 날이 새파랗고, 당하는 자는 두고 보자의 결기로 눈에 핏발이 섰다. 한쪽에선 제 발로 나와 놓고 합치려 하지 않는다고 다툰다. 편 가르기가 중한지라 최소한의 당론도 원칙도, 심지어 위아래도 없다. 그러면서도 항상 국민의 뜻을 버릇처럼 되뇌는 것은 똑같다.

관중의 지혜와 습붕의 슬기가 제환공의 패업을 든든히 뒷받침했다. 그런 경륜은 없이 제 무리의 이익만을 따져 토사구팽(兎死狗烹),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속셈을 구밀복검(口蜜腹劍)의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꾸미려 드니 패업은 어디서 이룬단 말인가? 잃은 길을 찾아줄 늙은 말의 지혜가 아쉽다. 묵직한 경륜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15/20160315035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