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391] 연서조저(燃犀照渚)

bindol 2020. 8. 4. 04:58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김종직(金宗直)의 '술회(述懷)' 시를 읽는다. "인사고과 핵심은 전형에 달렸으니, 어진 이가 어이해 안팎 천거 혐의하랴. 열에 다섯 얻는대도 나라 보답 충분커늘, 임금이 귀히 여김 어이해 헤아리랴. 열 손가락 가리킴을 삼가지 아니하면, 남이 다시 물소 뿔 태워 우저 물가 비추리라. 천군은 지엄하고 여론은 공변되니, 대오가 입 다물고 말 없다고 하지 마소(庶績之凝在銓敍, 哲人何嫌內外擧. 拔十得五足報國, 寧用計校王玉女. 十手所指苟不愼, 人更燃犀照牛渚. 天君有嚴輿論公, 莫謂臺烏噤無語)."

시 속에 고사가 많다. 조정의 인재 선발은 전형을 잘해 적임자를 서용하는 데 달렸다. 춘추시대 대부 기해(祁奚)가 늙어 사직하며 원수 해호(解狐)를 천거했다가 그가 죽자 아들 오(午)를 천거한 일이 있다. 나랏일에는 원수도 없고 아들도 없다. 적임자만 있다. 4구는 '시경(詩經)' '대아(大雅), 민로(民勞)'에 "왕이 너를 옥으로 여기시니, 내가 크게 간하노라(王欲玉女, 是用大諫)"에서 따왔다. 못된 소인들이 왕의 총애를 믿고 권세를 도둑질함을 꾸짖은 내용이다. 인재 선발 기준이 임금의 총애 여부여서는 안 된다.

6구도 고사다. 진(晉)나라 때 온교(溫嶠)가 우저(牛渚) 물가에 이르니, 깊이를 모를 물속에서 이상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물소 뿔에 불을 붙여 비추자 온갖 형상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열 사람이 손가락질하는 인사를 강행하면 나중에 물소 뿔에 붙인 불로 비춰보아야 할 일이 생긴다.

7구의 천군(天君)은 양심이다. 8구도 고사. 한나라 때 어사대(御史臺) 앞 나무에 까마귀가 모여들어 오대(烏臺)라 불렀다. 송나라 때에 시 인이 바른말 하지 않는 어사를 두고 "까마귀가 입 다물고 소리가 없네"라고 조롱한 일이 있다. 임금에게 바른말로 아뢰어야 할 대간이 입을 굳게 닫아도, 지엄한 양심과 공정한 여론의 힘을 끝내 이겨낼 수는 없다는 의미다.

깊은 물속에서 괴물들이 날뛴다. 물소 뿔에 불을 붙여 물속 귀신의 온갖 형상을 낱낱이 드러낼 사람은 누구인가? 시 한 수에 담긴 뜻이 깊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08/20161108034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