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393] 부승치구(負乘致寇) |

bindol 2020. 8. 4. 05:0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주역 '해괘(解卦)'에 '짐을 등에 지고 수레에 타니 도적을 불러들인다(負且乘, 致寇至)'는 말이 있다. 공영달(孔穎達)의 풀이는 이렇다. "수레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 타는 것이다. 등에 짐을 지는 것은 소인의 일이다. 사람에게 이를 적용하면, 수레 위에 있으면서 물건을 등에 진 것이다. 그래서 도둑이 자기의 소유가 아닌 줄을 알아서 마침내 이를 빼앗고자 한다." 짐을 진 천한 자가 높은 사람이 타는 수레 위에 올라앉았다. 도둑이 보고 등에 진 것이 남의 재물을 훔친 것임을 알아 강도로 돌변해 이를 빼앗는다는 말이다.

부승치구(負乘致寇)는 깜냥이 못되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재앙을 자초하는 일의 비유로 자주 쓰는 말이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의 '부차승(負且乘)'에서 이를 풀이했다. 군자도 불우할 때는 등에 짐을 질 수 있다. 고대의 어진 재상 이윤(伊尹)과 부열(傅說)도 한때 밭 갈거나 남의 집 담장 쌓아주는 천한 일을 했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임금의 스승이 되자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훌륭하게 일을 잘했다. 그러니 등에 짐 지는 것과 수레를 타는 것은 굳이 따질 만한 것이 못된다. 그렇다면 주역에서 왜 이렇게 말했을까?

성호의 설명은 이렇다. "이 말을 했던 것은 그 사람이 이익만을 탐하는 소인인지라, 비록 네 마리 말이 끄는 높은 수레에 앉아서도 변함없이 등에 짐을 지는 재주를 부렸기 때문이다. 군자가 아래에 있고, 소인이 득세를 하니, 어찌 도둑을 불러들이지 않겠는가?" 동중서(董仲舒)도 한마디 거든다. "군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천한 사람의 행실을 하는 자는 반드시 재앙에 이른다(居君子之位, 爲庶人之行者, 其患禍必至)."

제 버릇을 개 못 줘서 수레에 올라앉아서도 재물을 챙겨 등에 질 생각만 한다. 환난이 경각에 닥쳤는데도 등짐만 불리려다 결국 엉뚱한 도둑놈의 차지가 된다. 천한 소인을 수레 위에 올린 임금, 올라앉아 제 등짐 불릴 궁리만 한 소인, 그 틈을 노려 강도질을 일삼은 도둑. 이 셋이 힘을 합치면 망하지 않을 나라가 없다. 소인의 재앙이야 자초한 일이지만, 그 서슬에 나라가 결딴나고 마니 그것이 안타깝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22/20161122032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