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399] 영영구구(營營苟苟)

bindol 2020. 8. 4. 05:06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새를 노래한 김안로(金安老·1481~ 1537)의 연작 중에 '해오라기(鷺)'란 작품이 있다. '여뀌 물가 서성이다 이끼 바위 옮겨와선/ 물고기 노리느라 서서 날아가지 않네./ 눈 같은 옷 깨끗해서 모습 몹시 한가하니/ 옆에 사람 누군들 망기(忘機)라 하지 않겠는가?(蓼灣容與更苔磯, 意在窺魚立不飛. 刷得雪衣容甚暇, 傍人誰不導忘機.)'

눈처럼 흰 깃털을 한 해오라기가 고결한 자태로 물가에 꼼짝 않고 서 있다. 선 채로 입정(入定)에 든 고승의 자태다. 망기(忘機)는 기심(機心), 즉 따지고 계교하는 마음을 잊었다는 뜻이다. 사실은 어떤가? 녀석은 아까부터 배가 고파 제 발밑을 무심코 지나가는 물고기를 잔뜩 벼르고 있는 중이다. 속으로는 물고기 잡아먹을 궁리뿐인데 겉모습은 고결한 군자요, 한가로운 상념에 빠진 고독자다. 사람들은 그 속내를 간파하지 못한 채 고결한 군자의 상징으로 떠받든다. 그 덕에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하고 애꿎은 까마귀만 구박이 늘어졌다.

이미지 크게보기한 냇가에서 검은댕기 해오라기 한 마리가 물고기를 잡고 있다. /조선일보 DB

 

해오라기는 음흉한 속내를 지녔을망정 욕심 사납게 설쳐대지 않고 오래 서서 먹잇감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안다. 겉모습만으로는 군자의 기림을 받을 만하다. 성대중(成大中·1732~1809)은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말했다. "아등바등 구차하게 먹는 것만 추구하는 자는 금수와 다를 것이 없다. 눈을 부릅뜬 채 내달아 이익만을 좇는 자는 도적과 다름없다. 잗달고 악착같아서 사사로운 일에 힘쓰는 자는 거간꾼과 똑같다. 패거리 지어 남을 헐뜯으며 삿된 자와 어울리는 것은 도깨비나 마찬가지다. 기세가 등등해서 미친 듯이 굴며 기운을 숭상하는 자는 오랑캐일 뿐이다. 수다스럽게 재잘대며 권세에 빌붙는 자는 종이나 첩에 지나지 않는다.(營營苟苟, 惟食是求者, 未離乎禽獸也; 盱盱奔奔, 惟利是趨者, 未離乎盜賊也. 瑣瑣齪齪, 惟私是務者, 未 離乎駔儈也. 翕翕訿訿, 惟邪是比者, 未離乎鬼魅也. 炎炎顚顚, 惟氣是尙者, 未離乎夷狄也. 詹詹喋喋, 惟勢是附者, 離乎僕妾也.)"

세상에 짐승이나 도적 같고, 거간꾼이나 도깨비 같은 사람이 너무 많다. 아랫사람에게는 오랑캐처럼 굴다가 윗사람에게는 종이나 첩처럼 군다.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안 하는 짓이 없고, 못 하는 짓이 없다. 해오라기를 타박할 겨를이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03/20170103029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