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402] 처명우난(處名尤難)

bindol 2020. 8. 4. 05:1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다산은 백련사에 새 주지로 온 혜장을 신분을 감추고 찾아가서 만났다. 처음 만난 혜장은 꾸밀 줄 모르고 진솔했지만 거칠었다. 다산은 그런 그가 퍽 마음에 들었다. 이후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서 자주 만나 학문의 대화를 이어갔다.

다산이 혜장에게 써준 시 '회증칠십운기혜장(懷橧七十韻寄惠藏)'은 140구에 달하는 장시다. 혜장에게 건넨 진심어린 충고가 담겼다. 서두는 이렇다. "이름 높은 선비를 내 살펴보니, 틀림없이 무리의 미움을 받네. 이름 이룸 진실로 쉽지 않지만, 이름에 잘 처하긴 더욱 어렵네. 이름이 한 단계 나아갈수록, 비방은 열 곱이나 높아만 가지(吾觀盛名士, 必爲衆所憎. 成名固未易, 處名尤難能. 名臺進一級, 謗屋高十層)." 높은 명성의 필연적 대가는 비방과 구설수다. 이름을 이루기가 참 어렵지만, 그 이름을 잘 간수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다산 정약용

 

다시 건너뛰어 읽는다. "사람을 대하기가 가장 어려우니, 헐뜯는 말 여기에서 들끓는다네. 근엄하면 오만하다 의심을 하고, 우스갯말을 하면 얕본다 하지. 눈이 둔해 옛 알던 이 기억하지 못하면, 모두들 교만하다 얘기를 하네. 말에서 안 내렸다 까탈을 잡고, 불러도 대답 없다 성을 내누나(接物最費力, 毁言此沸騰. 色莊必疑亢, 語詼期云陵. 眼鈍不記舊, 皆謂志驕矜. 咎因騎不下, 怒在呯不譍)." 비방은 일거수일투족에 따라다닌다. 앉는 데마다 가시방석이요, 도처에 실족을 기다리는 눈길들이다.

다산의 충고가 이어진다. "덕은 가벼워서 들기 쉽지만, 비방은 무거워 못 이긴다네. 자기가 높이면 남이 누르고, 자신이 내려야 남이 올리지. 부드럽게 처신함 아이 같아야, 지극한 도(道) 내 몸에 엉기게 되네. 봉황은 더더욱 몸을 낮추고, 기러기도 주살을 두려워하지. 빼어난 기운은 머금어 둬야, 구름 박차 마침내 날 수가 있네(德車酋猶易擧, 謗重嗟難勝. 自揚必人抑, 自降必人升. 致柔如嬰兒, 至道迺可凝. 威鳳彌低垂, 冥鴻亦畏 . 逸氣有含蓄, 雲翮竟翔曾羽)."

시를 받아든 혜장이 말했다. "선생님! 어린아이처럼 부드럽게 처신하란 말씀을 새겨듣겠습니다. 오늘부터 제 호를 아암(兒巖)으로 하렵니다. 아이처럼 고분고분해지겠습니다." 혜장의 호가 아암이 된 연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4/20170124030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