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491] 두문정수 (杜門靜守)

bindol 2020. 8. 5. 05:30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곱게 물든 은행잎에 아파트 단지 길이 온통 노랗다. 느닷없이 밤송이를 떨궈 사람을 놀라게 하던 마로니에 나무의 여섯 잎도 노랗게 물들었다. 만추(晩秋)의 고운 잎을 보면서 곱게 나이 먹어가는 일을 생각했다.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말했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역경이 적지 않다. 구차하게 움직이다 보면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다. 이 때문에 바깥일이 생기면 안배하고 순응하고, 형세나 이익의 길에서는 놀란 것처럼 몸을 거둔다. 다만 문을 닫아걸고 고요하게 지키면서 대문과 뜨락을 나가지 않는다. 마음과 운명의 근원을 마음으로 살피고, 함양하는 바탕에 대해 오로지 정신을 쏟는다. 엉긴 먼지가 방 안에 가득하고 고요히 아무도 없는 것같이 지내도, 마음은 환히 빛나 작은 일렁임조차 없다. 질병이 날로 깊어가도 정신은 더욱 상쾌하다. 바깥의 근심이 들어오지 못하고, 꿈자리가 사납지 않다(人之處世, 多少逆境. 苟爲所動, 殆不勝其苦. 故外物之至, 安排順應, 勢利之道, 斂身若驚. 惟杜門靜守, 不涉戶庭, 玩心於性命之源, 專精於涵養之地. 凝塵滿室, 若無人. 而方寸炯然, 微瀾不起. 故疾病日痼, 精神益爽, 外慮不入, 夢境不煩)."

세상 사는 일에 어려움은 늘 있게 마련이다. 일에 닥쳐 아등바등 발만 구르면 사는 일은 고해(苦海) 그 자체다. 두문정수(杜門靜守), 바깥으로 쏠리는 마음을 거두어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돈을 많이 버는 수가 있다고 꼬드기면, 못 들을 말을 들은 듯이 몸을 움츠린다.

생각지 않은 일이 생기면 낙담하지 않고 곧 지나가겠지 한다. 나이 들어 몸이 아픈 것이야 당연한데 덩달아 정신마저 피폐해지면 민망하다. 거처는 적막하고 소슬해도 마음속에 환한 빛이 있고,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기상이 있다. 근심이 쳐들어와도 나를 흔들지 못하고, 늘 꿈 없이 잠을 잔다.

몸은 기운이 남아도는데 마음에 불빛이 꺼진 인생이 더 문제다. 세상일마다 다 간섭해야 하고, 제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니 마음에 분노가 식지 않고, 밤마다 꿈자리가 사납다. 가을은 수렴의 계절, 손에 쥔 것 내려놓고 닥쳐올 추운 겨울을 기다린다. 낙목한천(落木寒天)의 때를 맞이하려고 나무마다 저렇게 환하게 등불을 밝혔구나.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31/20181031039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