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을 살펴보는데 '천리여면(千里如面)'이라 새긴 인장이 눈길을 끈다. 용례를 찾아보니 송순(宋純)이 "천리에도 대면하여 얘기 나눈 듯, 한마디 말로 마음이 서로 맞았네(千里如面談, 一言而心契)"라 했고, 이익(李瀷)은 "천리에 대면한 듯, 종이 한 장에 정을 다했다(千里如面, 一紙盡情)"고 쓴 것이 있다. 그제야 이 인장이 편지의 봉함인(封緘印)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먼 벗에게 편지를 써서 봉한 뒤, 그 위에 이 도장을 꾹 눌러서 찍었다. 보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전했다.
우리 옛 시조에도 이런 작품이 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 리라도 지척이요, 마음이 천 리오면 지척도 천 리로다. 우리도 각재천리(各在千里)오나 지척인가 하노라." 마음이 맞통하는 사이라면 천 리 거리도 장애 가 되지 못한다. 바로 곁에 있어도 천 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 리 멀리 헤어져 있어도 늘 지척에 있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어떤 사이인가? 천 리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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