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원숭이를 키우고 있었다. 원숭이는 제법 묘기를 부릴 줄 알았다. 곡예를 가르치면 잘 따라 했다. 노인은 원숭이를 저잣거리로 데리고 나가 돈을 벌기로 했다. 원숭이 곡예판을 여니 금방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원숭이는 주변 사람들을 멀거니 쳐다볼 뿐 재롱을 떨지 않았다. 아무리 다그쳐도 움직임이 없었다. 노인이 꾀를 생각해 냈다. 원숭이는 피를 싫어한다는 속설을 떠올린 그는 원숭이가 보는 앞에서 닭의 목을 자른 것이다. 피가 쏟아졌다. 공포에 질린 원숭이는 그제야 징소리에 따라 재주넘기·뒷구르기 등 곡예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 바로 ‘살계경후(殺鷄儆<7334>)’다. 한 사람을 벌해 다른 사람에게 경고한다는 뜻이다.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한자에는 같은 의미의 성어가 여럿 있다. 전쟁터에서 또는 일반 행정에서도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리더십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유사한 뜻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삼국지의 영웅 촉(蜀)나라 제갈량(諸葛亮)과 관련된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제갈량은 228년 위(魏)나라 정벌에 나서면서 대장군으로 마속(馬謖)을 임명했다. 제갈량은 전장으로 떠나는 마속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며 구체적인 계략을 알려 줬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마속은 지시를 어기고 제멋대로 진용을 짜고 전투를 벌였다. 결과는 대패였다.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泣) 마속(馬謖)을 참(斬)해야 했다. 유능한 장수였지만 군령을 세우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던 선택이었다.
‘살일경백(殺一儆百)’이란 말도 있다. 한 사람을 죽여 100명에게 경고한다는 의미다. 이는 한서(漢書)에 뿌리를 둔 말이다. 한서는 “하나로 백을 경고하면 모든 사람들이 복종하게 된다. 공포감은 스스로를 새롭게 변화시킨다(以一警百, 使民皆服, 恐懼改行自新)”고 했다.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남중국해에서 무력 사용을 주장하는 한 학자의 기고문을 게재했다는 소식이다. 베트남과 필리핀을 공격해 다른 나라에 ‘살계경후의 교훈’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공포감으로 어찌 아시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단 말인가. 어설픈 학자의 궤변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漢字, 세상을 말하다]殺鷄儆<7334> 살계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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