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베이징의 국가대극원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던 오페라 ‘중산(中山)·일선(逸仙)’이 갑작스레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홍콩 정부가 돈을 댄 이 오페라는 작곡에만 4년을 들인 대작이다. 내용은 제목인 중산 또는 일선을 알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모두 2133년의 ‘황제 체제’를 끝장낸 신해혁명(辛亥革命)의 주역인 쑨원(孫文)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공연이 취소된 건 오페라 내용을 중국 당국이 탐탁지 않게 생각한 결과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오페라 제목인 중산과 일선은 어떻게 나온 말들일까. 먼저 쑨원의 다른 이름인 중산을 보자. 쑨원은 1894년 청나라의 실력자 이홍장(李鴻章)에게 개혁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혁명의 길로 나선다. 이듬해 광저우(廣州)에서 무장 봉기를 계획했다가 실패한 뒤 일본으로 망명한다. 이때 일본의 한 여관에 숙박하면서 이름을 써야 했는데 본명을 쓸 수는 없었다. 이에 쑨원의 일본 지인(知人)이 여관이 위치한 곳에 나카야마(中山)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한 집안이 사는 것에 착안해 쑨원의 이름을 ‘나카야마 쇼(中山樵)’라고 기재한다. 훗날 미야자키 도덴(宮崎滔天)이 33년의 꿈이라는 쑨원의 일대기를 썼는데 이를 중국인 장스자오(章士釗)가 번역하면서 쑨원의 성인 쑨(孫)에 중산이라는 이름을 가져와 쑨중산(孫中山)이라고 사용했다. 쑨중산이란 이름이 널리 쓰인 배경이다.
일선(逸仙)은 쑨원의 호(號)다. 쑨원이 세례를 받을 때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인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일신’을 세례명이자 호로 삼았다. 한데 그의 한학(漢學) 선생이 일신(日新)보다는 광둥어(廣東語)로 발음할 때 같은 소리가 나는 일선(逸仙·은둔한 신선)을 호로 하는 게 낫겠다고 해서 ‘손일신(孫日新)’이 아닌 ‘손일선(孫逸仙)’이 된 것이다. 손일선을 광둥어로 발음하면 쑨얏센이 된다. 영어의 ‘Sun Yat-sen’은 바로 이 손일선의 광둥어 발음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1925년 59세로 사망할 때까지 쑨원은 체포·암살을 피하기 위해 많은 가명을 썼다. 그러나 청나라가 무너져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진 뒤에는 스스로 서명할 때 꼭 본명인 ‘쑨원’을 썼다고 한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scyou@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漢字, 세상을 말하다] 中山 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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