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 속 한자이야기] (46)
유림 219호에는 ‘艱難辛苦’(어려울 간/어려울 난/매울 신/쓸 고)가 나오는데, 이 말은 ‘몹시 힘들고 어려우며 고생스러움’을 뜻하며,‘艱難險阻’(간난험조),‘千辛萬苦’(천신만고)와 뜻이 類似(유사)하다.
‘艱’자의 원래 뜻은 ‘다루기 힘든 흙’이었으나 점차 ‘어렵다’‘괴롭다’‘고생하다’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艱苦’(간고:고생)와 ‘艱深’(간심:시문의 뜻이 깊어 해석하기 어려움)등에 쓰인다.
‘難’자는 본래 ‘菫’과 ‘鳥’를 결합한 글자 형태였으나 劃數(획수)를 줄이기 위하여 ‘難’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새의 일종’을 가리켰는데, 점차 ‘어렵다’‘쉽지 않다’‘근심’‘재앙’‘나무라다’‘원수’‘우거지다’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難堪’(어려울 난/견딜 감:견디기 어려움),‘難關’(난관:수월하게 넘기기 어려운 고비),‘難産’(난산:해산이 순조롭지 못하여 고생함),‘難兄難弟’(난형난제:양자간에 낫고 못함이 없음)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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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자는 손잡이가 있고 양날이 있어 자를 수 있으며 끝이 뾰족하여 찌를 수도 있는 刑具(형구)의 상형이다. 후에 ‘맵다’‘매운 맛’‘고통’ 등의 뜻으로 확대됐다.
辛의 用例(용례)에는 ‘辛苦’(신고:어려운 일을 당하여 몹시 애씀),‘辛勤’(신근:고된 일을 맡아 부지런히 일함),‘辛辣’(신랄:가혹하고 몹시 매서움),‘辛酸’(신산:슬프고 괴로움) 등이 있다.
‘苦’자는 ‘씀바귀’를 가리킨다. 뜻에는 ‘쓰다’라는 의미 외에도 ‘괴로워하다’‘괴롭히다’‘맑다’‘거칠다’‘간절하다’‘멀미’ 등이 있다.‘苦樂’(고락:괴로움과 즐거움),‘苦辭’(고사:간절히 사양함),‘苦學’(고학:학비를 자력으로 벌어 공부함),‘甘呑苦吐’(감탄고토:자신의 비위에 따라서 사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쓰인다.
家系的(가계적)으로 보면 공자는 滅門家(멸문가) 출신인 60대 노인과 10대의 소녀 사이에서 많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태어났다. 게다가 父親(부친)은 세살 때 돌아가시니 生業(생업)을 위해 온갖 직업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사에 성실을 다하는 성품에 힘입어 微官末職(미관말직)을 거쳐 마침내 한 나라의 재상의 반열에 올랐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의 이상 실현의 꿈은 守舊(수구) 실세(實勢)들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이에 다시 자신의 經綸(경륜)을 펼치기 위한 13년간의 轍環(철환)은 목숨을 담보로 한 行步(행보)라 해도 過言(과언)이 아니다.政治(정치)의 꿈을 접고 다시 故國(고국)에 돌아온 그는 後進(후진) 養成(양성)과 傳統文化(전통문화)의 繼承(계승)을 통한 새로운 문화 창출에 專念(전념)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본인의 離婚(이혼), 자식 부부의 결혼생활 실패, 외아들 리와 愛弟子(애제자) 顔回(안회)의 사망과 같은 不幸(불행)은 계속되었다. 그야말로 超人的(초인적)인 의지가 없이는 극복하기 힘든 逆境(역경)의 연속이었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배고픔과 시름조차 잊은 채 자기완성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러므로 萬代(만대)의 師表(사표)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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