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268] 장흥 高씨
양반에도 급수가 있다. 호남의 A급 양반 집안이 전남 창평에 살고 있는 창평 고씨들이다. 이 집안을 양반으로 꼽는 이유는 임진왜란 때 3부자가 의병을 이끌고 나가 전투에서 모두 순절(殉節·전사)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제봉 고경명과 차남 고인후가 금산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죽었다. 당시 60세의 고경명이 의병을 이끌고 나갈 때 쓴 ‘마상격문(馬上檄文)’이 유명하다. 제봉의 장남 고종후는 아버지와 동생의 원수를 갚겠다며 진주성 2차 전투에 의병을 이끌고 나가 싸우다가 전사한다. 이 집안은 300년 후인 구한말에도 후손 녹천 고광순이 가국지수(家國之讐·집안과 나라의 원수)와 싸우겠다며 의병을 이끌고 연곡사에서 싸우다가 죽었다. 규장각 직각 벼슬을 지냈던 고정주는 사립학교인 창흥의숙을 세워 인재를 키웠다. 인촌 김성수, 현준호, 가인 김병로가 배출됐다. 한편 고경명의 후손 중 일부가 전남 창평을 떠나 장흥의 평화마을에 내려가서 살았다. 장흥은 제암산, 억불산, 사자산, 천관산 등 명산이 많아서 근래에 소설가가 많이 나온 고장이다. ‘장흥 가서 소설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이다. 억불산 자락의 평화마을에는 고경명의 후손인 고씨들이 살았다. 평화마을에는 무계 고택이 유명하다. 수백 년 된 팽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서 세월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고택 앞 송백정(松百井)은 소나무와 백일홍이 어우러져 있는 운치 있는 연못인데, 고택 뒤로 솟아있는 억불산 암봉의 강한 바위 기운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인공으로 조성한 비보(裨補) 연못이기도 하다. 무계 고택에서 배출된 인물은 고제환(1810~1890)이다. 고제환은 40세 때 보성군수를 지내다가 파직당했다. 나라의 세금을 착복한 지방 토호 세력을 잡아다가 곤장을 때렸기 때문이다. 곤장 맞은 토호 세력은 당시 권력 실세인 안동 김씨들과 결탁되어 있었고, 안동 김씨의 압력으로 군수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고향인 평화의 무계 고택에서 쉬고 있던 고제환은 53세 때 ‘난’(亂)의 주동자가 된다. 장흥의 아전들이 백성들에게 가혹한 세금 착취를 했고, 착취당한 시골 사람들이 전직 군수였던 고제환에게 찾아와 하소연하자 고제환은 ‘아전들을 혼내주라’고 지시한 것이다. 군수를 지냈던 사람이 ‘고제환의 난’ 주동자가 된 것이다. 군수가 난의 주동자가 된 일은 매우 드물다. 고초는 겪었지만 죽지는 않았고, 철종이 죽고 대원군이 정권을 잡자 복권되었다. 명문가로서 스토리가 많은 집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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