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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수사와 기소 분리, 검·경 갈등 키워선 안돼[출처: 중앙일보]

bindol 2020. 11. 3. 05:25

문영호 변호사

 

‘삼청교육’의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1980년 집권한 군부가 비상계엄 하에서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밀어붙인 사업이었는데, 주변에서 색출한 불량배를 군부대에 강제수용한 다음 일정 기간 신체단련으로 인성을 개조해 사회로 복귀시켰다.

검·경 담 쌓기로 협업 안되면
제도 개혁이라 할 수 있을까
형벌권 실현 위해 서로 협력해야

정권 차원의 사업에 경찰과 검찰도 동원됐다. 대상자 중 죄질 나쁜 일부를 추려 사법절차에 넘겼다. 경찰 보존 자료상의 관내 폭력 전과자나 폭력 우범자 위주로 뽑은 리스트를 놓고 경찰서 수사과장실에서 몇 차례 등급심사가 열렸다. 군 정보기관 지역담당자(소령)와 관할 검찰청 검사가 참여하는 합심제였지만, 대체로 리스트를 만든 경찰 의견대로 통과됐다. A급 판정자가 구금 상태로 검찰에 넘어왔다.

당시 진주지청 말석 검사로서, 그런 사건을 몇 달 동안 처리했다. 구속을 풀거나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하긴 불가능했기에, 기소에 필요한 증거가 허술한 사건을 맡으면 눈앞이 캄캄해졌다. 얼기설기 엮어 처리하면서 자괴감에 사표 던질까 고민도 했다. 그처럼 경찰의 수사 주도에 힘이 실릴수록, 검사의 기소권은 쪼그라든다는 걸 확인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 난 건, 머지않아 수사에 관한 경찰의 위상이 크게 달라질 것 같아서다.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로 분리되고, 수사한 사건을 경찰이 종결까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뀐다. 지난 2월 개정된 형사소송법과 수사 준칙 등이 시행되는 내년 1월 현실화된다.

방대한 인력과 조직을 갖춘 경찰은, 온갖 궂은 일까지 맡게 되고 책임도 막중하다. 그런데 업무 중 일부인 범죄수사에 관해선, 거의 대부분의 수사를 사실상 주도하며 책임을 지는데 비해 권한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문제제기를 해왔다. 검사의 간섭 때문에 자율성이 떨어지고, 구질구질한 일을 떠넘기는 검찰이 생색내기는 가로챈다는 등의 불만도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수사단계에서 검사 지휘의 배제와 함께, 검사 우위의 구도를 상호 대등관계로 바꿔 기소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사건은 ‘불송치’로 자체 종결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검찰이 반길 리 없다. 특수부처럼 검사가 직접 수사에 나서는 부서와 달리, 경찰이 수사해 송치한 사건을 처리하는 형사부에서 더 그럴 거 같다. 그동안 사건이 송치된 후에 증거를 보완하라고 지휘해도 먹혀들지 않았는데, 이제 수사지휘를 받지 않을뿐더러 종결권까지 거머쥔 경찰이 어떻게 나올지 뻔하다. 경찰이 퍼 넘긴 사건 뒤치다꺼리해 법원에 넘기는 ‘지게꾼’ 이라는 신세타령이 검사 입에서 더 나오게 생겼다.

경찰이 개시한 수사가 형벌로 끝맺음하려면 기소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수사가 종결단계에 이르러 기소라는 결실을 맺는 과정에서, 검사더러 기소 대상인지 아닌지는 누군가 판별해줄 테니 공소사실 정리와 적용법조 적시 같은 일만 하라는 건 말이 안된다. 기소대상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증거를 따져 판별하는 일이 기소권의 핵심이라고 할 테니까. 반면에 수사를 이끌어온 경찰 입장에선 그건 수사 종결권의 영역이라고 우길 게 뻔하다. 분리하기 까다로운 두 기능을 분리해 맡긴다면, 서로 의견이 달라 갈등이 생기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한편 수사 종결권을 경찰에게 줘, 검사와 대등관계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현실성에 의문이 든다. 소속 부처가 다른 경찰은 본래 검찰과 대등한 기관이다. 다만 범죄수사에 국한해서 그동안엔 검사를 기능상 우위에 뒀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경찰이 진행한 수사를 종결하며 결론을 내리는 검사의 역할이 기소권 행사로 마찰없이 연결될 수 있었다. 이제 검사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경찰이 검사와 엇박자를 내며 기 싸움을 벌이면 수습이 쉽게 되겠는가.

그런 점이 고려됐는지 경찰의 종결권은 ‘일차적’인 것이고, 사후에 검사가 사법통제 형식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이 길을 터놓았다. 고소·고발 또는 피해자의 이의제기가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직권으로도 개입해 불송치 사건의 결론을 뒤집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구제가 실효적으로 이루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권력을 등에 업거나 경찰이 내린 결론을 원용하려는 세력에 영합하면, 검사의 뒤늦은 개입이 맥을 쓸 수 없다.

아무래도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검·경간 ‘담쌓기’로 흘러갈 것 같다. 역할 분담으로 공동의 목표인 형벌권 실현에 충실하라는 것이지 등을 돌리라는 게 아니다. 협업이 필요할 땐 협업해야 한다. 20년 가까이 수사권 조정 줄다리기로 잃어버린 협업 정신을 되살리지 못하고 갈등만 키운다면, 그런 제도 도입을 개혁이라 할 수 있을까.

문영호 변호사

[출처: 중앙일보] [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수사와 기소 분리, 검·경 갈등 키워선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