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字文 工夫

[93] 仁慈隱惻 [94] 造次弗離

bindol 2020. 11. 12. 18:44

[93] 仁慈隱惻 [94] 造次弗離

 

[93] 仁慈隱惻 어질 인, 사랑할 자, 숨을 은, 슬플 측

[94] 造次弗離 지을 조, 버금 차, 아닐 불, 떠날 리

 

仁慈隱惻(인자은측): 어진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고 또한 이를 측은히 여겨야 한다.

造次弗離(조차불리) : 남을 위한 동정심을 잠시라도 잊지 말고 항상 가져야 한다.

仁者心之德이요 愛之理也慈愛仁之用也惻隱仁之端也

孔子曰 君子無終食之閒違仁하여 造次必於是라하시니 仁之不可離 如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는 밥 한 그릇을 먹는 짧은 시간도 인()을 떠남이 없어 조차(造次: 급하여 경황이 없을 때)에도 반드시 마음을 인()에 둔다.” 하셨으니, ()을 떠날 수 없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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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慈隱惻 造次弗離 인자은측 조차불리

인자하고 측은히 여기는 그 마음이

한 순간도 마음 속에 떠나서는 아니된다.

 

훈음(訓音)

어질 인 사랑 자 숨을 은 슬퍼할 측

지을 조 버금 차 아닐 불 떠날 리

 

해설(解說)

이번 제7장은 치국(治國)의 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 동안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의 도리를 공부했는데 이제부터는 치국(治國)의 도리를 배우고자 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우선 수신(修身)을 하고 제가(齊家)를 한 연후에 해야 한다고 하지요.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자가 자기자신은 물론 집안을 가지런히 하지 못했다면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치국의 도리에서 제일 먼저 나온 것이 인자은측(仁慈隱惻) 조차불리(造次弗離)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즉, 위정자(爲政者)는 백성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늘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우선 글자부터 하나하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자은측(仁慈隱惻) 인자하고 측은히 여기는 그 마음이

()은 인() + ()의 형성자(形聲字), ()는 니()와 통하여, 친근하게 구는 애정의 뜻을 나타냅니다. , 자기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생활해 나가자면 서로 사랑하고 친밀하게 지내야 한다는 데서 '어질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 ()하여 과실(果實)의 씨 속에 있어 싹이 되는 보드라운 부분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그래서 과일 중 딱딱한 핵 속의 씨를 인()이라 합니다.

()설문(說文)에 인친야(仁親也)라 했으니, ()이란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은 유교(儒敎)에서 제일 가는 덕목으로 중요시 되는 말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인간성을 존중하는 정신입니다. 이는 공자(孔子)의 핵심사상입니다. ()은 충서(忠恕)라 했으니, ()이란 자기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요[盡己], ()는 자기의 처지와 입장을 미루어 남을 대접하는 것이다[推己及人)라 했습니다. 이것이 인()의 설명입니다. 유교(儒敎)에서 중시하는 오상(五常) 중 의()()()()은 인()의 개념 속에 들어 있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인을 '마음의 본체(本體). 본성(本性)'이라 하는 것입니다.

()는 심() + ()의 형성자(形聲字), '()''불어나다'의 뜻입니다. 자식을 불리어 키우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자애(慈愛), 사랑'의 뜻을 나타냅니다.

()는 인()과 더불어 사랑을 뜻합니다. 어머니처럼 푸근한 부드러운 사랑이라 할까요? 어머니는 자애(慈愛)의 상징이지요. 그래서 어머니를 일러 자모(慈母)라 합니다. ()는 유교(儒敎)에서도 많이 쓰이지만 불교(佛敎)에서는 특히 많이 쓰입니다. 불보살(佛菩薩)님의 사랑을 자비(慈悲)라 표현합니다. 자비(慈悲)란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특히 자()는 즐거움을 주는 것을 말하고, ()는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발고여락(拔苦與樂)이라 합니다. 이는 불보살(佛菩薩)님이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지극한 사랑을 말합니다.

()은 부(. ) + (-)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는 휩싸서 숨기다의 뜻입니다. '언덕에서 숨다', '숨겨진 지점'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은()은 은()과 통하여 '가엾이 여기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은 심() + ()의 형성자(形聲字), ()'잣대'의 뜻으로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동정하다, 슬퍼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인자은측(仁慈隱惻)은 인자하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인자(仁慈)는 어질고 자애스러움을 말합니다. 은측(隱惻)은 측은(惻隱)과 같은 말로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무릇 정치를 하는 위정자들은 백성에게 인후(仁厚)하고 자애스런 마음을 가지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칠 것입니다. 이는 정치가만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맹자(孟子)》『공손추장구상(公孫丑章句)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지금 사람들이 갑자기 어린 아이가 장차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해 하는 마음을 가지니, 이것은 어린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고 해서도 아니며, 향당과 붕우들에게 명예를 구해서도 아니며, 잔인하다는 명성을 싫어해서 그러한 것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단서(端緖),(惻隱之心仁之端也)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요,(羞惡之心義之端也)

사양할줄 아는 마음은 예()의 단서요,(辭讓之心禮之端也)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是非之心智之端也)

사람이 이 사단을 가지고 있음은 사체(四體)를 가지고 있음과 같으니,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仁義)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요, 자기 군주(君主)가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

이 사단(四端) 중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으뜸입니다. ()이 바탕으로 자리잡지 않으면 나머지 셋도 성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맹자께서는 이 사단을 실천하면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지만 이를 실천하지 못하면 제 부모를 섬기는데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기본이 서지 않는데 무엇인들 바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 자애스럽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은 바로 이것을 일러 주고 있습니다.

조차불리(造次弗離) 한 순간도 마음속에 떠나서는 아니 된다.

자애와 측은히 여기는 그 마음을 한 순간도 마음속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는 천자문의 이 구절을 공부해 봅니다.

()는 금문(金文)에 의하면 면() + () + ()의 화의자(會意字), '()'''의 뜻이고, '(')'()'의 생략형으로, 큰 접시의 음식이라고도 하고, []의 상형(象形)이라고도 합니다. '()''고하다'의 뜻으로 풀이됩니다. 집 안에 제물을 놓고 기도하기에 이르다의 뜻으로 풀이되고, 집 안에서 기도하기 위하여 배를 타고 이르다의 뜻으로도 설명됩니다. 또 사물이 목적점에 이르다의 뜻에서, '만들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뒤에 사태가 진행되다의 뜻에 관계되는 데서 () + ()가 되었습니다. '나아가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착(. )과 고()의 형성자(形聲字)로 보기도 합니다.

보통 '지을 조, 만들 조'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는 '갑자기 조'로 쓰였습니다. 이는 '졸지에, 잠깐'의 뜻을 가지고 있어 다음에 이어지는 차()와 더불어 쓸 때, 조차(造次)'아주 짧은 시간'을 나타냅니다.

()는 상형자(象形字)로 사람이 한숨을 쉬는 모양을 본떠, '묵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제()와 통하여, '순서 있게 가지런히 함'의 뜻이나 '다음에 계속되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또 차()는 이() + ()의 회의형성자(會意形聲字), 사람이 너무 지쳐 하품[]을 하며 게으름을 피우면서 첫째로 나아가기를 단념하고, 둘째[]로 뒤쳐져 있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버금, 둘째'란 뜻을 나타냅니다. 또 이()가 음()을 나타냅니다.

()은 상형자(象形字)로 얽히는 끈을 두 개의 막대기로 휘둘러 떨어뜨리는 모습에서. '떨다, 제거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가차(假借)하여 '아니다'라는 부정(否定) 조자(助子)로 사용합니다. ()은 또 미국 화폐의 단위인 '달러'를 뜻하는 글자와 모양이 비슷하여 가차자(假借字)로 쓰이기도 합니다.

()은 불()과 대체로 유사하지만 불()이 주로 동사의 행위를 결정지어 주는 조동사의 역할을 하는데 비해, ()은 동사, 명사, 형용사의 뜻을 도와주는 보조사의 역할로 쓰이고 있습니다.

()는 추() + ()의 형성자(形聲字)입니다. 본디 '꾀꼬리'의 뜻을 나타내었으나. '()', '()'와 통하여 '칼집을 내어 떼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또 리()와 통하여 '걸리다'의 뜻도 나타냅니다.

조차불리(造次弗離)는 한 순간도 떠나서는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한 순간도 떠나서는 아니 되는가 하면, 바로 앞에서 설한 인자은측(仁慈隱惻)입니다. 이 인자은측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느끼게 합니다.

조차(造次)는 조차지간(造次之間)을 말합니다. '지극히 짧은 동안'을 뜻합니다. 창졸(倉卒)과 수유(須臾)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리(弗離)'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번 천자문에서는 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맹자께서는 "인은 하늘이 내린 존귀한 벼슬이요, 사람이 편안히 살 수 있는 집이다. 아무도 막지 않는데도 인()하지 않은 것은 슬기롭지 못한 탓이다." 하였습니다. 공자께서는 "진실로 인()에 뜻을 둔다면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께서 인()에 대해서 수도 없이 말씀하셨지만 천자문의 조차(造次)에 관련한 말은 논어(論語)》『이인편(里仁篇)에 나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군자는 밥먹는 동안이라도 인()을 어기지 않아야 하며, 위급한 때라도 인()에 의지해야 하고, 넘어지고 자빠지는 순간에도 인()을 지켜야 한다."

(君子無終食之間違仁이니 造次必於是하며 顚沛必於是니라)

군자 무종식지간 위인 조차 필어시 전패 필어시

그러나 공자께서는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같은이인편(里仁篇)에 나옵니다.

"나는 아직 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불인(不仁)을 미워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불인(不仁)을 미워하는 사람도 인을

실천하는 것이니, 그 해악이 자신에게 미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단 하루 동안이라도 인의 실천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아직 그렇게 하는데 힘이 부족하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마 그런 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나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인의 바탕은 누구나 갖추어졌지만 이를 진실로 행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는 능력이 미치지 못함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탓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불성(佛性)이 있지만 부처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드문 것과 같습니다.

천자문의 인자은측 조차불리(仁慈隱惻 造次弗離)를 공부하다 보면 이 구절은 바로 불보살님을 두고 이르는 말이라 여겨집니다. 실로 그러합니다. 불보살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마음은 어느 한 순간도 중생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 대자대비(大慈大悲)는 인자은측(仁慈隱惻)과 다르지 않습니다. 중생을 언제나 가엾이 여기시기에 대자비심을 발하시는 것입니다. ()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베푸시는 것이요, ()는 중생의 고통을 제거해 주시는 것이지요. 이를 사자성어로 발고여락(拔苦與樂)이라 합니다.

불자는 성불(成佛)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부처가 되려면 부처다운 행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을 닮고자 한다면 이 자비(慈悲)를 바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 마음을 한시도 떠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