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枇杷晩翠 梧桐早凋
【本文】 枇杷晩翠 梧桐早凋 비파만취 오동조조
비파나무 잎사귀는 늦도록 푸르고 오동나무 잎사귀는 가장 먼저 시든다.
【訓音】
枇 비파나무 비 杷 비파나무 파 晩 늦을 만 翠 푸를 취
梧 오동나무 오 桐 오동나무 동 早 이를 조 凋 시들 조
【解說】
지난 장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은일(隱逸)의 삶 속에서 사시사철 가운데 봄과 여름의 정경을 묘사했는데, 이번 장에서는 가을을 알리는 오동나무와 겨울에도 푸른 빛을 띠고 있는 비파나무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枇杷晩翠 梧桐早凋(비파만취 오동조조)
비파나무 잎사귀는 늦도록 푸르고 오동나무 잎사귀는 가장 먼저 시든다.
우선 글자의 자원(字源)부터 알아보고 그 뜻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비(枇)는 목(木) + 비(比)의 형성자(形聲字)로, '비파나무'를 뜻합니다. 비파나무는 그 잎이 비파(琵琶)와 유사하므로 이름지어진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악기 비파(琵琶)를 비파(枇杷)라 하기도 합니다.
파(杷)는 목(木) + 파(巴)의 형성자(形聲字)로, '파(巴)'는 '반반하게 펴다'의 뜻입니다. 지면(地面)을 반반하게 고르는 나무 자루가 달린 농구(農具)를 말합니다. '발고무래'의 뜻을 나타냅니다. 여기서는 '비파나무'를 말합니다.
만(晩)은 일(日) + 면(免)의 형성자(形聲字)로, '면(免)'은 신생아(新生兒)가 태어나는 모양을 본떠, 빠져나오다의 뜻입니다. 햇빛이 지상으로부터 빠져나가 버린 때, 해 질 녘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저물다, 늦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취(翠)는 우(羽) + 졸(卒)의 형성자(形聲字)로, '졸(卒)'은 '수(粹)'와 통하여, '순수하다'의 뜻입니다. 섞임이 없는 날갯짓의 모양에서, '물총새'의 뜻을 나타냅니다. 물총새의 날개는 푸른 빛을 띠고 있어 '비취색, 청록색, 푸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오(梧)는 목(木) + 오(吾)의 형성자(形聲字)로, '오동나무'를 말합니다. 벽오동과에 속하는 낙엽교목(落葉喬木)입니다.
동(桐)은 목(木) + 동(同)의 형성자(形聲字)로, '동(同)'은 '통(筒)'과 통하여, '통'의 뜻입니다. 나무로서 속이 통처럼 되어 있는 '오동나무'의 뜻을 나타냅니다.
조(早)는 일(日) + 갑(甲)의 회의자(會意字)로, '일(日)'은 '해'의 뜻입니다. '갑(甲)'은 사람의 머리를 본뜬 것입니다. 사람의 머리[甲] 위에 태양[日]이 시작하는 이른 아침의 뜻에서, '이르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뒤에, '甲' 부분이 '十'으로 생락되었습니다.
조(凋)는 仌(冫) + 주(周)의 형성자(形聲字)로, '주(周)'는 '조(弔)'와 통하여, '애처롭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추위[冫] 때문에 초목이 애초로운[周] 꼴이 됨을 말합니다. 이는 곧 '시들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비파만취(枇杷晩翠)는 비파나무는 늦도록 푸르다는 뜻인데 이는 겨울에도 푸른 빛을 발하는 정경을 표현한 말입니다.
비파(枇杷)는 과일나무로 장미과(薔薇科)의 상록교목(常綠喬木)으로 잎은 어긋나며 타원상 장란형(長卵形)이라 비파처럼 생겼습니다. 꽃은 백색으로 9~11월에 피며 열매는 이듬해 5, 6월에 황색으로 익습니다. 열매를 비파(枇杷)라 하고 잎을 비파엽(枇杷葉), 꽃을 비파화(枇杷花), 뿌리를 비파근(枇杷根), 종자를 비파인(枇杷仁)이라 합니다. 특히 비파엽은 청폐지해(淸肺止咳), 강역지구(降逆止嘔), 폐열해수(肺熱咳嗽), 기역천급(氣逆喘急), 위열구역(胃熱嘔逆), 번열구갈(煩熱口渴) 등에 씁니다. 또한 차로 마시면 호흡기질환에 좋다고 합니다. 비파인(枇杷仁)은 해수(咳嗽)에 진해(鎭咳), 거담(去痰)에 효과가 있으며 간기능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만취(晩翠)는 겨울철에도 변하지 않는 송죽(松竹)처럼 푸른빛 그대로 있는 것을 말합니다. 비파나무는 그 꽃잎이 추운 계절에 피어나므로 만취라 합니다.(枇杷其花葉對寒節而發故曰晩翠)
흔히 지조(志操)나 절개(節介)를 말할 때 '송죽(松竹)과 같다', 혹은 '송백(松柏)과 같다' 고 합니다만 비파도 사철 변하지 않는 기상이 있어 '늙어서도 지조를 바꾸지 않음'을 일러 만취(晩翠)라 부르기도 합니다.
따라서 비파만취(枇杷晩翠)는 늦은 추운 겨울에도 푸른빛을 발하는 비파나무를 표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이 나무가 어떤 혹독한 상황에서도 청백한 지조를 굽히지 않는 군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기에 이와 같은 표현을 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동조조(梧桐早凋)는 오동나무 잎사귀는 일찍 시든다는 뜻으로 가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동(梧桐)은 오동나무를 말하는데 보통 벽오동(碧梧桐)나무를 말합니다.
벽오동(碧梧桐)은 벽오동과(碧梧桐科)의 낙엽 활엽 교목(落葉闊葉喬木)으로 높이 15m가량이며, 껍질은 녹색을 띠며, 잎은 3~5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여름 6~7월에 황록색 꽃이 피고, 열매는 가을 10월 경에 익습니다. 재목은 가구나 상자, 악기 등을 만드는데 씁니다.
조조(早凋)는 일찍 시든다는 뜻입니다. 오동나무는 초가을에 제일 먼저 잎이 떨어지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오동나무는 금기(金氣)를 얻으면, 즉 가을 기운을 얻으면 잎이 제일 먼저 떨어지므로 오동조조(梧桐早凋)라 한 것입니다.(梧桐得金氣而先零 故曰早凋)
명(明)나라 때 왕상진(王象晉)이 편찬한 식물 백과사전인 《군방보(群芳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동나무 잎새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안다."
(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
오동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온 세상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했으니 오동나무는 가을을 처음 알리는 나무라 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서 험허득통(涵虛得通) 선사께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매화가지에 꽃 한 송이 피어남에 천하에 봄이 왔음을 알 수 있고,
오동나무 잎 하나 떨어짐에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
(梅枝片白 足知天下春 梧桐一葉 可知天下秋)
이처럼 오동나무는 가을을 알리는 나무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동나무는 가을을 알리는 선구자 같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오동나무는 예로부터 봉황(鳳凰)이 깃드는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봉황은 성군(聖君)이 세상에 나오면 나온다는 서조(瑞鳥)입니다.
봉황은 뭇새들과는 달리 성스럽고 기품이 있어 아무 데나 머무르거나 아무것이나 먹지 않습니다. "봉황의 성질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鳳凰之性 非梧桐不棲 非竹實不食)" 하였습니다. 이 새가 세상에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다 하여 성스럽게 생각하는 새입니다. 봉황의 출현은 곧 성군(聖君)의 출현이기에 봉황은 제왕의 권력과 존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동나무는 성조(聖鳥)인 봉황이 깃드는 나무인 만큼 격조 높은 나무입니다. 오동나무는 군자다운 지조를 가진 나무입니다. 군자의 지조를 상징하는 나무로 모범이 되는 것은 앞서도 거론했지만 송죽(松竹)이나 송백(松柏)을 든다 하였고 비파나무도 만취(晩翠)라 하여 굳은 절개를 상징한다 하였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든다면 오동나무를 들 수 있습니다. 서리 맞으면 잎을 떨구고 시드는 오동나무가 무슨 지조가 있겠는가 싶지만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천년을 간다 하였습니다. 어찌 지조가 없다 할 수 있겠습니까?
오동나무는 가볍고 연하여 각종 가구나 악기로 사용하였습니다. 오동은 가볍고 연하지만 무늬가 아름답고 잘 뒤틀어지지 않는 성질이 있을 뿐만 아니라 습기에도 강하고 불에도 강하므로 예로부터 거문고나 가야금, 비파 등의 악기는 반드시 오동나무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4대 문장가로 유명한 상촌 신흠(象村申欽. 1566-1628)의 시 한 수를 소개합니다.
桐千年老恒藏曲 동천년로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 월도천휴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 유경백별우신지
오동은 천 년이 지나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 바탕은 남아 있고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이 시는 뜻있는 선비나 지사들이 애송하였고, 특히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스님이나 김구(金九) 선생 등도 이 시를 애송하셨다 하니 어찌 오동이 군자의 지조를 상징하지 않는다 할 수 있겠습니까?
비파만취(枇杷晩翠) 오동조조(梧桐早凋)는 각기 겨울과 가을을 표현한 나무입니다. 그렇다면 절기상 가을을 말한 오동조조(梧桐早凋)가 먼저 오고 겨울을 노래한 비파만취(枇杷晩翠)가 뒤에 와야 하겠지만 천자문의 운율상 순서가 바뀐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은일(隱逸)의 삶을 살면서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무상(無常)을 느끼다가도 비파나무와 오동나무를 통하여 선비의 지조, 군자의 기상을 담담히 새겨봄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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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枇杷晩翠 梧桐早凋
枇 비파나무 비/ 杷 비파나무 파/ 晩 늦을 만/ 翠 푸를 취
■ 枇杷晩翠(비파만취): 비파나무는 늦게까지 푸르고,
梧 오동나무 오/ 桐 오동나무 동/ 早 일찍 조/ 凋 시들 조
■ 梧桐早凋(오동조조): 오동나무는 일찌감치 시든다.
96. 枇杷晩翠 梧桐早凋(비파만취 오동조조)
: 비파나무 잎사귀는 늦도록 푸르고, 오동나무 잎사귀는 일찍 시든다.
비파(枇杷)는 장미과에 속하는 열매 맺는 나무로 사시사철 푸른빛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입니다.
만취(晩翠)는 겨울철에도 변하지 않는 푸른빛 그대로 있는 것을 말합니다.
비파만취(枇杷晩翠)는 추운 겨울에도 푸른빛을 발하는 비파나무를 표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어떤 혹독한 상황에서도 청백한 지조를 굽히지 않는 군자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기에 이와 같은 표현을 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오동(梧桐)은 오동나무를 뜻하며, 보통 벽오동(碧梧桐)나무를 말합니다.
조조(早凋)는 일찍 시든다는 뜻이며, 초가을에 제일 먼저 잎이 떨어지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명(明)나라 때 왕상진(王象晉)이 편찬한 군방보(群芳譜)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 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오동일엽락 천하진지추) - "오동나무 잎새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안다."
오동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온 세상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했으니, 오동나무는 가을을 처음 알리는 나무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오동나무는 '가을을 알리는 나무'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오동나무는 가을을 알리는 선구자(先驅者) 같은 나무입니다.
천자문 전편에서 '연꽃과 잡초'에서 군자(君子)다움을 보았듯이, 이번 편에선 '비파나무와 오동나무' 모습에서 군자다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비파나무는 사시사철 푸른빛에서 꾸준한 지조를 볼 수 있으며, 오동나무는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선구자의 역할을 볼 수 있습니다. 변치 않는 지조와 아울러 선각자로서 삶도 군자(君子)의 모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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