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25] 총과 주판의 대결
입력 2021.01.29 03:00
항우(項羽)를 꺾고 천하 권력을 손에 쥔 유방(劉邦)이 인물평을 했다. 그의 최고 참모였던 장량(張良)을 평가하는 데 이르러선 “장수의 막사에 앉아 전략을 만들어 천리 밖 싸움터의 승부를 가르는 대목에서는 내가 그만 못하다”고 언급한다.
약 2200년 전 유방이 말한 ‘전략 구성’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기록에 ‘운주(運籌)’라는 단어로 등장한다. 셈을 할 때 흔히 사용했던 나뭇가지를 주(籌), 그를 움직이는 행위는 운(運)이라고 표현했다. 싸움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의 구성 및 운용을 일컫는다.
왕조시대 최고위 정책을 다뤘던 조정(朝廷)에서 벌이는 그런 행위는 보통 묘산(廟算)이라고 적었다. 국가 운영의 꼭짓점에 있는 왕이나 신하들이 조정의 한복판인 묘당(廟堂)에서 벌이는 계산 행위, 즉 전략과 전술의 구성이다.
흔히는 타산(打算)으로 적는다. 따지고 재는 행위다. 속으로 줄곧 셈을 하면 암산(暗算), 정밀하게 따지고 또 따지면 정산(精算)이다. 기가 막힐 정도의 셈이면 묘산(妙算)이고, 잘못 헤아리면 오산(誤算)이다.
이리저리 재고 따져보는 셈의 전통은 앞서도 얘기했듯 중국이 참 유장하다. 셈 가지 이리저리 얽는 주산(籌算)의 습성은 결국 주판(籌板·珠板)의 발명에도 이르렀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에서 남을 이기기 위한 병법(兵法)의 화려한 전통으로 이어졌다.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포석(布石)과 형세(形勢) 등 눈에 바로 드러나지 않는 조건을 활용하는 복잡한 싸움법의 게임인 바둑이 중국의 대표적인 발명품이라는 점을 떠올려도 좋다. 그런 전통의 중국은 간접적이며 우회적인 싸움법에 능하다.
정권 교체가 이뤄졌으나 미국의 대중(對中) 정책은 강경함을 유지할 전망이다. 서부 건맨(gunman)식 우직한 미국의 싸움법과 집요한 셈이 전통인 중국의 전법이 또 충돌할 기미다. 세기의 싸움이자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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