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26] 빛을 잃어가는 홍콩
입력 2021.02.05 03:00
제가 살던 곳을 떠나 새 삶의 터전을 찾고자 길을 나섰던 이민(移民)의 움직임은 중국의 역사 과정에서 참 많았다. 특히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천이(遷移)가 가장 빈번했다. 전란과 재난을 피해 살 곳을 찾아 나선 인구의 이동 때문이다.
대표적인 성어가 있다. 의관남도(衣冠南渡)다. 옷과 모자를 제대로 차려 걸친 사람들[衣冠]이 남쪽으로 건넜다[南渡]는 맥락이다. 앞의 ‘의관’은 그저 평범한 인구가 아니다. 옷과 모자를 제대로 입거나 쓴 사람, 즉 지식(知識)과 문물(文物) 등의 뜻을 담고 있다.
북에서 닥치는 이민족의 침략 전쟁, 그에 맞물렸던 각종 재난이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남쪽을 향해 움직이게 한 중국의 역사적 현상을 일컫는다. 대개는 장강(長江) 등 큰 하천을 경계로 삼는 까닭에 ‘남쪽으로 건넜다’는 표현이 붙었다.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정서는 또한 여러 언어 흔적으로 남았다. 고향 마을 우물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뜻의 배정리향(背井離鄕)이 유명하다. 세연(細軟)이라는 단어는 우리 쓰임에는 없지만 중국어에서는 ‘귀중품’에 해당한다.
이 말은 ‘작고 부드러운 것’이 우선 새김이지만 나중에는 전란이나 재난을 피해 새로 살 곳을 찾아 나설 때 반드시 챙겨야 했던 금전이나 값진 물건을 가리켰다. 몸에 감아 두르는 물건이라고 해서 규전(糾纏)이라고도 적었다.
정착했다가 언젠가는 또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중국인의 고단한 이민 역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지난해 국가안전법 적용으로 중국의 통제가 강해지자 홍콩 사람들이 이민 대열에 부쩍 많이 합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의관남도’의 새 버전이다. 이제는 하천보다 훨씬 거대한 바다를 넘어야 하는 고단한 이민의 길이다. 지식과 문화적 역량, ‘의관’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의 홍콩은 예전의 빛을 다 잃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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