薄醉
薄醉西湖酒 박취서호주
高樓枕簟淸 고루침점청
無停水空逝 무정수공서
欲墮月猶明 욕타월유명
船語侵籬過 선어침리과
漁燈繞砌生 어등요체생
風烟極瀟灑 풍연극소쇄
卜築背孤城 복축배고성
술을 조금 마시고
마포 술을 조금 마셔 취하고
높은 누각 대자리에 풀썩 누웠네
쉬지 않고 강물은 하염없이 흘러갔는데
지려 하는 달은 여전히 밝기만 하네
뱃전의 대화 소리 울타리를 넘어오고
고기잡이 등불이 섬돌을 둘러 켜지네
풍경과 안개가 너무도 맑고 깨끗하여
외로운 성을 등지고 집터를 잡았네
영조 때의 이름 있는 시인 봉록(鳳麓) 김이곤(金履坤·1712~1774)이
서울 마포에 살 때 지었다.
당시 마포는 술집이 번창하였다.
그 술을 조금 마시고 얼큰해지자 높다란 누각에 올라 대자리 위에 누웠다.
얼마나 잤을까? 누각 아래 한강은 밤새도록 무심히 흐르고,
새벽이 가까워져 왔건만 달은 여전히 환한 빛을 뿌린다.
한강에는 벌써 배들이 떠서 뱃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울타리를 넘어들어오고,
고기잡이배들은 어등(漁燈)을 켜 섬돌 아래 반짝거린다.
성곽을 벗어나 강가 마을 마포에 집을 정하고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평소 내가 왜 여기에 집을 정해 살고 있는지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술에 조금 취해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나자 되살아난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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