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9] 국체명징운동과 파시즘
입력 2020.12.04 03:00
1912년 도쿄제국대학 법학교수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는 저작 ‘헌법강화(講話)’에서 ‘천황기관설’을 주장한다. 국가는 법인격을 가지며, 천황은 국가 최고기관으로서 의회, 내각 등 타 기관의 보좌를 받아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왕권신수설이나 군주주권설이 수명을 다하고 국가법인설에 기초한 입헌군주제가 보편화된 시대였다. 미노베의 학설은 시대 변화를 반영한 이론으로, 민권운동 확산 등과 맞물려 ‘다이쇼 데모크라시’ 의회주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후 천황기관설은 헌법 해석의 통설이 되었으며, 천황주권설을 따르지 않는 것이 천황 통치권을 부정하는 대역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1935년 2월 귀족원 의원 기쿠치 다케오가 돌연 천황기관설이 국체(國體)에 반하는 모반(謀反)이라며 미노베를 비판한다. 그때까지 문제가 없던 학설을 느닷없이 정치로 끌어들이는 뜬금없는 공격이었다. 학비(學匪), 공적(公賊)으로 매도된 미노베가 학설의 취지를 알리며 해명에 나섰지만 우익 단체들의 대중 동원과 언론 압박으로 비난 여론은 진정되지 않았고, 기관총으로 천황을 시해하려는 것이냐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미노베의 처벌을 요구하는 성난 군중도 있었다. 미노베는 결국 의원직을 사퇴하고 검찰의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된다. 의회 견제를 거북스럽게 여기던 우익 정파, 군부는 이참에 대중의 분노를 등에 업고 권력 장악에 나선다.
이때 국민 정신 개조가 필요하다며 나온 것이 의회의 ‘국체명징(明徵)성명’이다. 천손강림·만세일계 천황의 통치가 일본의 국체임을 명징하게 밝히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는 반지성적 선언이었지만, ‘넥스트 미노베'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지식인들의 침묵 속에 일본은 주술에 걸린 듯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황국의 길로 포장된 파시즘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권력이 이념적 선명성을 내세워 비판을 거부하고, 편을 갈라 적개심을 고취하며,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입을 막으려 드는 것은 시대를 불문한 파시즘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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