碁翁
自謂居鄕了債翁 자위거향요채옹
有無要與四隣通 유무요여사린통
靑雲金馬緣何薄 청운금마연하박
白首林泉興不窮 백수임천흥불궁
多少園田貽後計 다소원전이후계
若干卷軸付兒工 약간권축부아공
老來碁癖還堪笑 노래기벽환감소
滿目詩饞月又風 만목시참월우풍
바둑 즐기는 늙은이
나는야 시골 살며 빚이 없는 늙은이
재물은 이웃과 사이좋게 나눠 쓰네
벼슬길 청운에는 인연 없어 못 올라도
전원에서 늙어가며 흥겨운 일 끝이 없네
얼마간의 논밭은 후손에게 물려주고
약간의 서책일랑 아이 주어 공부시키네
늙을수록 바둑 병은 우습기도 하거니와
눈에 가득 시를 부르는 달과 바람은 어쩔거나.
150년 전 전라도 장성에 살던 선비 변종락(邊宗洛·1792~1863)이 만년에 썼다.
그의 호는 기옹(碁翁), 바둑을 즐기는 노인이다.
그 호를 따서 기옹정(碁翁亭)이란 정자를 짓고 바둑에 빠져 지냈다.
갚아야 할 빚이 없는 시골 늙은이라니 태평하고 여유로운 심사를 짐작하겠다.
벼슬 운은 없어도 그 대신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자식들 생계도 다 장만해두었고, 손자들 공부시킬 책도 충분하다.
이만하면 여생을 즐길 일만 남았다.
바둑은 평생의 고질병이지만 사방 천지에
멋진 풍경 펼쳐지니 시를 안 짓고는 못 배기겠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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