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객지에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객지에서(客懷)
이 몸은 동서쪽 그 어디로 가야 하나?
가는 곳 정처 없어 쑥대마냥 흘러가네.
떠돌다가 친구 만나 한 집에서 잠을 자며
난리 겪는 타향에서 새해를 맞이하네.
눈 덮인 산 훨훨 날아 기러기는 돌아가는데
새벽녘 바람 타고 나팔소리 들려오네.
서글퍼라, 낯선 땅을 구름처럼 가는 신세
돌아나는 봄풀에는 그리움만 하염없네.
此身那復計西東(차신나부계서동) 到處悠悠逐轉蓬(도처유유축전봉)
同舍故人流落後(동사고인유락후) 異鄕新歲亂離中(이향신세난리중)
歸鴻影度千峰雪(귀홍영도천봉설) 殘角聲飛五夜風(잔각성비오야풍)
惆悵水雲關外路(추창수운관외로) 漸看芳草思無窮(점간방초사무궁)
조선 중기의 시인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이 임진왜란 와중에 지었다. 평소에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각지를 떠돌았는데 반기는 이 하나 없는 전란 중에 정처없이 방랑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자신도 잘 알 수가 없다.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 한 집 한 방에서 새해를 맞은 것이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위로일 뿐 다시 헤어져 각자의 행로를 떠난다. 눈에 덮인 첩첩한 산을 넘어 기러기는 제 고향으로 돌아가건마는 새벽길 떠나는 내 귓속에는 전투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와 허둥대게 한다. 편안한 안식의 시간은 언제나 찾아오려나? 처량한 나그네의 눈에는 돋아나는 풀잎이 자꾸만 들어온다. 그래도 대지에는 새봄이 찾아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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