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서울에 살다보니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서울에 살다보니
서울은 번화하기 짝이 없는 곳
그래도 지방 사람에겐 걸림돌 많네.
담장은 밝은 달빛 가로막았고
아침저녁 개 짖는 소리 시끄러워라.
시구를 찾다 보면 귀향을 꿈꾸고
조촐한 술상 내와도 함께할 사람 없네.
집 앞으로 아는 얼굴 숱하게 지나가도
내게는 오직 강변의 고향 생각뿐.
京國
京國繁華地(경국번화지)
還於遠客妨(환어원객방)
門墻蟾影限(문장섬영한)
昏曉犬聲揚(혼효견성양)
覓句成歸夢(멱구성귀몽)
無人對薄觴(무인대박상)
經過多識面(경과다식면)
惟我水雲鄕(유아수운향)
양평 사람 헌적(軒適) 여춘영(呂春永·1734~1812)이 서울로 집을 옮겨 살면서 시를 썼다. 서울은 그때도 누구나 가서 살고 싶은 번화한 도회지다. 그러나 타지에서 온 사람에게는 이래저래 거추장스럽고 거슬리는 일이 많아 적응하기 어렵다. 좁은 마당 높은 담장 때문에 하늘의 달도 보기 어렵고, 아침저녁이면 동네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마음이 어수선하다. 그러다 보니 시를 짓기만 하면 으레 짐 싸서 옛집으로 돌아가는 소망이 담긴다. 안에서 조촐한 주안상을 차려내 와도 불러서 술 한잔 기울일 친구가 없는 것도 마땅찮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그건 아니다. 집 앞으로 낯이 익은 사람들 뻔질나게 오가도 그뿐이다. 뭔가 모를 거리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한강변 툭 트인 고향 집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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