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새해를 맞아(新年得韻)

bindol 2021. 3. 13. 14:57

[가슴으로 읽는 한시] 새해를 맞아(新年得韻)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새해를 맞아(新年得韻)

새해 되어 기분 좀 풀려고 걸어온 길 찾았더니
바람 불고 구름 덮여 그늘질까 염려되네.
운명에 몸 맡기면 나쁜 상황 다 걷히고
사랑 품고 남 대하면 모두가 친구 되지.
위기에 돕겠다는 남의 손을 어찌 믿으랴?
재앙 준 것 뉘우치는 하늘을 곧 보리라.
큰 강에 뿌리는 찬비에 마음 서운하니
그대 보내며 적셔오는 눈물 어쩌면 좋을까?



春生料理舊岐尋(춘생요리구기심) 只恐風雲翳作陰(지공풍운예작음)
隨命置身無惡境(수명치신무악경) 懷仁接物摠知音(회인접물총지음)
扶傾曷恃時人手(부경갈시시인수) 悔禍將看上帝心(회화장간상제심)
最是長江寒雨裏(최시장강한우리) 不堪送子淚沾襟(불감송자누첨금)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흑산도에 유배된 1879년 새해를 맞아 지었다. 일본과 수교를 맺으려 하자 상소를 올렸다가 쫓겨난 처지다. 기분도 전환할 겸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더니 어두운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새 운명에 몸을 맡길 터라 최악의 상황은 벗어나겠지. 사랑으로 남을 대하면 다들 마음 여는 친구가 되리라 기대해본다. 문제는 나라요 사회다. 위기를 돕겠다며 내미는 남의 손길을 믿어도 좋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스스로 해결하고자 애쓸 때 재앙을 내린 하늘도 진정 후회할 것이다.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 마음 아픈 것만 빼놓고는 새로운 희망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