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돈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돈
해결하기 힘든 세상일을 잘도 해결하고
어리석은 자는 현자로, 지혜로운 자는 걱정꾼으로 만드네.
개원이란 글자가 분간되나 달이 찌그러진 듯하고
제부처럼 둥글어서 물 흐르듯 굴러가네.
온갖 물건을 헐값 만드니 권세 정말 무겁고
일천 집안을 파산시키고도 욕심을 그치지 않네.
이자 놓고 재물 불리느라 거간꾼들 바쁘니
서민도 하루아침에 제왕처럼 변하누나.
詠錢
能平世上難平事(능평세상난평사)
愚者爲賢智者愁(우자위현지자수)
字辨開元疑月缺(자변개원의월결)
形圜齊府象泉流(형환제부상천류)
摧殘百物權何重(최잔백물권하중)
破盡千家意不休(파진천가의불휴)
子貸殖繁勤駔儈(자대식번근장쾌)
飜令編戶等王侯(번령편호등왕후)
헌종 연간의 문신 해장(海藏) 신석우(申錫愚·1805 ∼1865)가 나이 들어 돈을 주제로 시를 썼다. 시와는 어울리지 않을 동전을 시로 쓸 수밖에 없었던 유쾌하지 않은 일이 많았던가 보다. 돈은 어떤 일도 해결한다. 돈이 있으면 바보도 현자가 되고, 돈이 없으면 제아무리 똑똑한 자도 걱정만 늘어놓게 된다. 한 귀가 나간 동전일지라도 물 흐르듯 세상 곳곳을 굴러다니며 못 하는 짓이 없다. 고생하여 생산한 물건값을 싸게 후려치고, 수천 가구를 파산시키고도 만족할 줄 모른다. 괴물 같은 돈의 위력에 고리대금업자만 신이 났다. 갑자기 졸부가 된 그놈이 제왕 부럽지 않은 권세를 휘두른다. 꼴사납게 표현한 그 모습은 요즈음 일이 아니라 200년 전 일이다. 개원은 당나라 화폐 이름, 제부는 당나라 거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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