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여름밤 마루에서

bindol 2021. 3. 13. 15:41

[가슴으로 읽는 한시] 여름밤 마루에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여름밤 마루에서

 

한여름이라 무더위에 시달려도
밤 되면 마루 앞에 멋진 풍경 펼쳐지네.
구슬이 빠졌나 별이 시냇물에 비치고
황금이 새는지 달빛이 안개를 뚫네.
이슬이 무거워 매화나무는 넋마저 촉촉하고
바람이 서늘하여 대나무는 풍류를 흘리네.
오래 앉아도 함께 구경할 벗이 없어
그윽한 흥취를 시에 담아 풀어내네.

 

 

夏夜山軒卽事

盛夏苦炎熱(성하고염열)
宵軒美景姱(소헌미경과)
珠涵星照澗(주함성조간)
金漏月穿霞(금루월천하)
露重梅魂濕(노중매혼습)
風凄竹韻多(풍처죽운다)
坐來無共賞(좌래무공상)
幽興屬吟哦(유흥속음아)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1579~ 1651)의 시다. 왕실 후손으로 시골에서 평범하게 생애를 보낸 그다. 그는 한여름 밤 시를 한 수 쓸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만 누리는 행복감을 표현하고 싶어도 곁에는 자랑할 친구가 없으니 시에다 풀어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게 아니다. 다들 무더위에 고생하고 있는 요즈음 밤만 되면 산골 내 집 마루는 별천지가 펼쳐진다. 마루에 앉으면 앞 시냇물에는 별빛이 박혀서 마치 진주가 빠진 듯하고, 밤안개를 뚫고 쏟아지는 달빛은 하늘에서 황금이 새어나오는 느낌이다. 이슬이 짙게 내려 나무 등걸까지 촉촉하니 매화의 넋마저 적셨을 테고, 바람이 선선히 불어오니 대나무 바람 소리는 멋진 음악을 연주하는 듯하다. 더위는 어느 순간 사라져 한여름이란 말이 무색하다. 시골 사는 맛이란 이런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