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그윽한 흥취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그윽한 흥취
집 가까이 울창한 나무 많아서
시원한 그늘 몇 섬이나 쏟아놓았네.
찾는 이 드물기에 방석을 높이 걸어두었고
늙은 뒤로는 집구석 떠날 일이 거의 없네.
한참을 노리자 개를 향해 닭이 덤벼들고
몰래 다가오자 뱀을 향해 참새가 짹짹거리네.
이웃집 꼬마 녀석 할 일 없어 심심한지
찔레꽃 따기 하자며 찾아오누나.
幽興
近宅多幽樹(근택다유수)
淸陰幾斛加(청음기곡가)
客稀高吊榻(객희고적탑)
人老罕離家(인로한리가)
久要鷄爬犬(구요계파견)
潛行雀吠蛇(잠행작폐사)
隣童無箇事(인동무개사)
來鬪蒺藜花(내투질려화)
홍애(洪厓) 이기원(李箕元·1745~?)이 시골 마을의 고요함을 시로 썼다. 집 주위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가 여러 그루라 짙은 그늘을 볏섬처럼 쏟아붓는다. 찾아오는 이도 없고 그렇다고 나가지도 않는다. 늙은 뒤로는 집 밖을 나갈 일도, 의욕도 없어졌다. 그렇게 한없이 적막한 시골집에서 고요함이 깨진다. 마당 한쪽에서는 병아리를 노리는 개를 향해 닭이 발톱을 치켜들어 푸드덕 덤벼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몰래 다가오는 뱀을 향해 참새들이 야단스럽게 울어댄다. 그 뒤로는 또 적막하다. 그 적막이 견딜 수 없는 이웃집 꼬마가 고개를 들이밀며 이 늙은이에게 찔레꽃 따기 내기나 하자며 말을 걸어온다. 고요와 소란의 흥취에 또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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